폭염이 2016년 여름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폭염은 자연적 현상이다. 기상전문가들은 폭염의 단기적 원인을 중국ㆍ몽골ㆍ러시아에서 달궈진 뜨거운 공기가 북태평양고기압에 막혀 한반도에 갇혀 있다는 데서 찾는다. 지구 온난화는 장기적 원인이다. 지난 100년간 온실 효과로 세계 온도가 연평균 0.85도 높아진 반면 우리나라는 1.8도나 상승했다.

폭염은 동시에 사회적 현상이다. 더위는 평등하지 않다. 한국전력거래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0.78대, 에어컨 보유 가구 비율은 67.8%였다. 최근에는 보유 가구 비율이 80%까지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에어컨은 사치재라기보다 이제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 시선을 끈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보유하지 못한 가구가 20%나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쪽방촌에 사는 어르신, 원룸에 거주하는 대학생,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힘겨운 서민들은 에어컨 없이 선풍기의 더운 바람으로만 폭염을 견뎌낼 것이다. 또, 에어컨이 있다고 그것을 늘 켜고 사는 것은 아니다. 전기요금 탓이다. 에어컨을 틀지 말지를 놓고 승강이를 벌인 가족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폭염의 2016년에서 관찰되는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의 우울한 풍경이다.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폭염은 따가운 햇볕만큼 뜨거운 논쟁들을 낳았다. 주택용ㆍ상업용ㆍ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한국전력공사의 도덕적 해이, ‘전기중독사회’로서의 한국사회 등에 대한 불만·분노·비판이 쏟아졌다.

사회학자인 내게 가장 무겁게 다가온 이슈는 전기중독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전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전기중독에 빠져 있다. 화석에너지 중심의 시스템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시스템으로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기중독은 화력 및 원자력 발전의 과잉 설비, 소비 증가, 새로운 설비 투자라는 악순환을 강화한다.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을 고려해 대안적인 전력공급 방식과 소비양식 구축이라는 과제를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중적으로 가장 관심이 컸던 이슈는 전기요금 체계다. 기존 요금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에 정부는 7~9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연말까지 새로운 요금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요금의 결정에는 국제 유가, 가계 부담, 기업 경쟁력 등 다양한 요소들이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요금 체계를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이 폭염이 끝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만의 것일까.

내가 정말 우려하는 것은 폭염의 미래다. 지구 온난화를 역전시킬 수 없다면, 도시화를 되돌릴 수 없다면, 한반도를 떠나지 않는다면, 폭염은 이제 동거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친구다. 문제는 이 친구가 재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특보, 온혈질환자의 대량 발생, 농작물에의 심각한 피해, 무더위로 인한 생산성 하락, 불쾌지수 증가에 따른 각종 사고의 확산은 재앙으로서의 폭염의 미래다. 2003년 3만5,000명이나 목숨을 잃은 유럽 폭염 사태가 결코 먼 산의 불은 아니다.

한반도가 아열대로 가는 도정에 있다면, 이제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폭염의 미래에 대한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해법은 두 가지다. 적절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 폭염에 대응한 건강 수칙 교육, 폭염 피해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기후 복지’ 강화가 단기적 과제라면, 기후 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처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적극적 전환이 장기적 과제다. 무엇보다 폭염을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인식과 정책의 변화가 중요하다.

누구는 말할지 모르겠다. 당신은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한가롭게 폭염의 사회학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고. 내 연구실이 있는 연세대 위당관 에어컨은 오후 5시에 꺼진다. 오후 9시 현재,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더위가 가시질 않는다. 벌써부터 내년 여름을 걱정하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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