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20세기 독일이 낳은 대문호 릴케의 ‘가을날’이란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24일 오전 귀국하는 리우 하계올림픽에 출전했던 태극전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한국 선수단은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은 3개, 동 9개로 종합순위 8위에 이름을 올려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4개 대회 연속 올림픽 ‘톱10’의 성적을 거뒀다. 참으로 장하고 대견스러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밤과 낮이 온전히 뒤바뀌는 지구 반대편 12시간의 시차를 극복하고 거둔 쾌거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 AP연합뉴스

여자 유도 정보경의 은메달로 시작해 여자 골프 박인비의 유례가 없는 골든 커리어그랜드 슬램 마침표까지, 거의 매일 한국선수단이 전해오는 낭보는 8월 타는 듯한 폭염 속에서도 한줄기 소나기 같은 청량감을 느끼게 했다.

늘 그렇지만 4년마다 펼쳐지는 지구촌 드라마에서 한국선수단이 당당히 주연의 역할을 맡는 장면을 보노라면 밀려오는 감동을 어쩌지 못한다. 모두들 끝났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태극전사들은 기적 같은 뒷심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번에는 특히 그런 극적인 장면이 많았다. 펜싱의 박상영, 사격의 진종오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살아난 경우다. 남녀 양궁의 전종목 석권과 박인비의 금빛 피날레,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킨 태권도까지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다. 비록 메달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준 타 종목의 투혼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리듬체조 불모지에서 꽃피운 손연재의 연기는 또 어떤가.

태극 전사들이 굵은 땀방울로 만든 결실을 지켜보면서 문득 시인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이란 시도 오버랩 됐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메달 하나하나, 땀방울 마디마디에 딱 들어맞는 시어가 아닐까.

또 하나의 거짓말 같은 드라마는 스포츠 외교전에서 나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이다. 유승민은 23명의 경쟁자중 4명을 뽑은 선거에서 2번째로 많은 득표로 임기 8년의 IOC선수위원에 당선됐다. 당초 유승민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했다. 탁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이지만 벌써 12년 전 아테네 올림픽 때의 일이다. 4년전 런던에서 딴 은메달은 단체전에서 나와 유승민의 존재감을 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전설’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를 비롯해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등 경쟁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 하지만 유승민은 모든 우려를 떨치고 낮은 자세로 표심을 공략해 역전드라마를 완성했다. 유승민의 IOC선수위원 당선으로 자칫 공백상태에 빠질 뻔한 한국 스포츠외교가 숨통을 이어가게 됐다.

김연아.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국 선수단은 불꽃같았던 17일간의 드라마를 뒤로하고 4년 후 일본 도쿄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평창동계올림픽이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1년6개월 후에는 평창에서 눈과 얼음의 축제가 열린다.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자크 로게 IOC위원장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펴엉창”을 발표하는 순간이 엊그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유승민 IOC선수위원 혼자서 차기 동계올림픽 개최국 한국의 스포츠 외교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피겨여왕’ 김연아가 있다. 유승민의 IOC위원 당선으로 ‘김연아 카드’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그러나 IOC위원장의 추천으로 뽑는 선수위원 3장의 카드가 남아있다. 위원장 추천 선수위원은 1명으로 정해진 국가별 쿼터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현재 이들 3명의 카드는 아시아 1명, 유럽 1명, 및 오세아니아 1명으로 대륙 별로 안배돼 있다. 아시아 몫으론 중국의 여자 쇼트트랙 스타 양양이 있다. 마침 양양의 임기는 2018년까지다. 김연아의 IOC선수위원 진입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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