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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손가락은 잊고, 달만 보자

입력
2016.08.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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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침팬지가 사람이 되려면 몇 년이나 있어야 할까요?”

동물원의 침팬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개 백 년, 이백 년, 천 년, 만 년, 백만 년으로 점점 커지는 숫자를 말하다가 누군가가 일억 년이라는 대답을 하면 곧 잠잠해진다.

아이들은 정말 놀랍다. 답을 맞혀서가 아니다. 침팬지는 영원히 사람이 될 수 없다. 침팬지가 진화해서 우리 인간이 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놀라운 까닭은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손가락이 아니라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가리키기(pointing)’ 행동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다. 다른 영장류들은 손가락질을 못 한다. 하지 않는다.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침팬지가 설사 무엇인가를 우연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해도 다른 침팬지들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그 자체를 본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엄마, 달 좀 보세요!”라고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엄마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본다. 가리키기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사회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침팬지나 보노보에게는 이런 기술이 없다. 우리 사람들과 유전자(DNA)의 98.8% 공유하는 데도 말이다.

‘가리키기’ 기술을 보유하고 못 하고를 가른 가장 큰 특징은 뇌의 크기다. 사람은 침팬지보다 뇌가 훨씬 크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가 이미 성체 침팬지의 뇌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크다. 여기서 출산의 고통이 생겼다. 어른의 뇌는 성체 침팬지보다 세 배나 커서 약 1.4㎏이다. 그 크기는 대략 500㎜ 생맥주 석 잔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스스로 커다란 뇌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지만 사실 큰 뇌는 생존에 그다지 유리하지는 않다. 뇌가 큰 아기는 엄마의 산도를 통과할 수가 없어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결국 아기가 채 성숙하기도 전에 일찍 낳아야 했다. 성숙하지 않은 연약한 아기를 자연의 위험에서 지키기 위해 부모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보살핀다. 게다가 자라면서 부쩍 커지는 뇌는 온갖 계산을 하면서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한다.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중앙처리장치(CPU)가 사용하는 전력이 예전의 286이나 386 컴퓨터를 사용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엄마들이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결국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많은 양분을 섭취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동물들은 진화 과정에서도 웬만하면 작은 뇌를 유지했다. 오죽하면 25인승 버스만 한 초식공룡 스테고사우루스의 뇌가 겨우 호두 한 알 만하겠는가. 그래도 커다란 덩치로 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의 뇌는 이렇게 커지게 된 것인가. 커다란 뇌의 약점을 능가하는 장점은 무엇일까.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은커녕 변변한 뿔도 없고 추위를 막아주는 근사한 털가죽도 없는 느려터진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집단을 이루는 공동체 생활이 필요하다. 먹이를 찾고,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하는 데 집단생활은 결정적으로 유리하다. 연구에 따르면 영장류는 신체 대비 뇌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집단의 크기도 커진다. 뇌가 클수록 공감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 박인비 선수의 마지막 파퍼트에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치 내가 박인비인 것마냥 두 손을 치켜든다. 우리 뇌에 있는 ‘거울신경(mirror neuron)’의 작용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거울신경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고 사회를 안전하게 구성시키도록 돕는다.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진 사람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은 함께 슬퍼한다. 이런 공감 덕분에 인간 사회는 안전해진다. 그런데 이게 대단한 게 아니다. 거울신경은 침팬지에게도 있다. 바나나를 먹고 있는 동료를 보는 침팬지들도 마치 자신이 바나나를 먹고 있는 것처럼 뇌에서 반응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람과 침팬지의 뇌의 차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침팬지와 달리 누군가가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본다. 그리고 달을 가리킨 손가락을 잊는다. 이것을 견월망지(見月忘指)라고 한다. “누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면 우리는 손가락이 향한 달을 본다. 그런데 만약 손가락을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우리는 달뿐만 아니라 손가락마저도 잃게 된다.”라는 뜻이다.

견월망지에 등장하는 달과 손가락은 모두 진실이다. 다만 방편과 본질을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인간이라면 달을 보는 게 정상이다. 손가락만 보면 달과 손가락 모두 잃는다. 작금의 사태는 구성원들에게 달 대신 손가락을 보라고 윽박지르는 지도자에게서 비롯되었다. 다행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아주 익숙한 일이라서 대부분의 구성원은 당황하지 않고 그가 달을 보기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의 영향으로 손가락만 버리지 말고 달도 함께 버리자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망월망지(忘月忘指) 하자는 것이다. 그냥 침팬지나 원숭이처럼 생각하고 살자는 것이다. 그렇게는 못 하겠다. 사람이 침팬지와 공통조상에서 갈라져서 이 정도 크기의 뇌와 공감능력을 얻기까지 무려 700만 년이 걸렸다. 그 세월이 아까워서 침팬지처럼은 못 살겠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손가락은 버리고 달만 보자. 그게 간단하다. 그리고 간단한 것은 대체로 옳다.

침팬지는 1억 년이 지나도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비록 침팬지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언젠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손가락은 잊고 달만 보자. 같이 슬퍼하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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