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새누리당이 대패한 지난 4ㆍ13 총선 직후 유행하기 시작한 말이다.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나타나는 권력누수 현상을 가리키는 일반 정치 용어인 ‘레임덕’을 한국의 현직 대통령 별명이 갖는 시적 각운 효과에 주목해서 변형시킨 것이다. 레임덕이란 말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청와대의 최근 표현으로는 ‘식물정부’라는 것이 있다. ‘식물정부’는 레임덕 상태에 빠진 정부를 가리킨다.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언론으로부터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 청와대는 “부패기득권 세력이 식물정부를 만들려” 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에 의해 ‘부패기득권’으로 지목된 보수 신문사가 대주주로 있는 종편 채널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레임덕 기준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새누리당 지지도보다 높으면 레임덕이 아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8월 3주차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 지지도는 34.6%이고 새누리당 지지도는 33.3%이니까, 아직은 레임덕이, 그러니까 ‘레임닭’은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부패기득권 세력이 식물정부를 만들려” 한다는 청와대의 주장이 나온 정황에 대해서, 단지 민정수석 비서관 한 명의 사퇴 내지는 교체로 인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레임덕 상태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있다. 반면, 대통령과 청와대가 스스로 ‘식물정부’ 운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바로 그 비서관이 구축해 놓은 권력망의 현실적 힘이 너무 세고 절실해서 대통령으로서는 그 비서관을 결코 내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나는 정치적으로는 박 대통령에 대해서 극히 비판적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늘 외치고 싶은 쪽이라서, 청와대와 ‘부패기득권’ 신문사 둘 중에서 어느 한 쪽을 편들기가 매우 힘들다. 아무튼 내게는 제3의 정황 분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즉, 실은 그 비서관의 사퇴 내지는 교체 자체가 레임덕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패기득권’ 신문사에 의해서 밀리는 것이야말로 레임덕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부패기득권’이라고 부른 신문사는 2014년에 대략 167만부로 발행 부수 제1위를 기록했다. 전국 일간지 23개사의 총 발행 부수는 대략 514만부였으니까 이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은 대략 32.5%였다. 8월 3주차의 대통령 지지율 34.6%보다는 조금 낮다. 어느 쪽 비율을 강조하든 간에, 청와대와 ‘부패기득권’ 신문사 사이의 이번 싸움은, 늘 최소한 대한민국 여론의 ‘3분의 1’을 차지해 온 보수 세력 내부의 분파적 정치 투쟁인 셈이다.

‘부패기득권’ 신문사는 지난 총선에서의 새누리당 패배 원인이 친박에게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것은 구독률 1위의 보수 언론사로서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할 수 있었던 정치적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즉, 이 신문사는 총선 참패 후 친박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며, 총선 이후 드러난 여론을 중시하면서 정치를 해나가야만 정권을 창출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문제가 되고 있는 민정수석 비서관의 의혹에 대해서도 ‘부패기득권’ 신문사는 여론을 내세우며 싸우는 것이다.

보수 세력의 이 두 분파는 지금 서로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의혹 문제가 어떻게 결판이 나든 간에 두 분파 중의 하나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이번에 물러나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위원장은 “정체성이니 하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분파들은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국기 문란’이라는 파쇼적인 어휘까지 동원되었다. 헌법, 형법, 국가보안법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인 ‘국기’는 일제 파쇼 시대의 전형적인 잔재다. 박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식물이 되든 동물이 되든 미생물이 되든 간에 다음 대선에는 보수 우파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들은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으니까. 폭염에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지만 나는 조금 춥다. 정치적으로 무섭고 떨린다는 얘기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