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20. 세계의 3대 광장

세계 3대 광장. 위로부터 모스크바 붉은 광장, 베이징 텐안먼 광장, 이스파한 이맘호메이니 광장.

2014년 7월23일 하바로브스크에서 오전 11시쯤 출발한 아에로플로트항공은 낮 12시쯤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현지시각으로 1시간 만에 오긴 했지만 시차가 7시간이니 8시간 비행한 셈이다. 비행기를 숙소 삼아 자고 또 자다보니 모스크바다. 러시아의 전쟁같은 교통혼잡 때문에 ‘러시아워’라는 말이 생겼다는 우스개 소리를 또 듣는다.

모스크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붉은 광장’, ‘크레믈린 궁전’이었다. 볼쇼이대극장 근처 ‘김치’라는 한식집에서 도시락 한 그릇 뚝딱 해치운 후 크레믈린으로 향했다. 크레믈린은 목요일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데 마침 이날은 수요일이었다.

젊은 군인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 삼위일체탑(트로이츠카야) 아래 입구를 건넜다. 왼쪽으로는 정부청사, 오른쪽에는 최근 건립된 대회당이 부조화다. 크레믈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대회당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 국보1호인 성모승천성당

하얀색의 성모승천성당에서 러시아의 또 다른 문화코드 ‘이콘’을 만났다. 일명 성화(聖畵)인데 특별하지도 않은 것이 러시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통 4단 높이로 이콘이 즐비하다. 하지만 성모승천성당은 보통 성당이 아닌지라 5단 이콘이 있었다. 성당을 들어서면 1단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째 이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성당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핵심 이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이콘의 주인공은 성모 마리아였다.

크레믈린궁 안에 전시된 '종의 왕'. 종의 일부가 깨져 나갔지만 사진포인트로는 그저 그만이다.

이 성당은 황제의 대관식 장소로 유명하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도 이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10세기 비잔티움에서 전래돼 러시아 토양에 맞게 뿌리내린 러시아정교회는 외견상으로 가톨릭교회의 성당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정교회 성당을 들어가보면 신자들이 앉는 의자가 없다. 서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성호를 그을 때 가톨릭은 위에서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십자 형태를 만들지만 정교회는 위에서 아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파이프오르간, 피아노 등 악기는 가톨릭 성당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정교회 성당에는 없다. 찬송가도 육성으로, 아카펠라로만 불러야 한다. 십자가의 모양도 다르니 두 종교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는 '짜르의 대포'

크레믈린궁 안에는 크고 웅장한 장식을 좋아하는 러시아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두 가지 상징이 있었다. 종과 대포다. 종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바닥에 떨어진 채로 전시 중인 ‘종의 왕’과 포신의 지름이 1m를 넘는 ‘짜르의 대포’가 그 주인공이다. 깨진 종을 칠 수도 없고, 이 대포로는 한 번도 사격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러시아와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다보니 크레믈린에서도 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붉은 광장의 야경

크레믈린궁 담벼락을 넘으면 바로 모스크바의 중심, ‘붉은 광장’이다. 크레믈린에서 직접 광장으로 가지는 못하고 처음 들어온 문으로 빠져나가 돌아와야 한다. 2차 대전때 나치군을 격퇴시킨 주코프 장군이 말에 올라탄 동상을 쳐다보며 ‘부활의 문’을 통해 광장으로 들어선다.

드디어 세계 3대 광장의 하나인 붉은 광장을 밟았다. 길다. 폭은 130m인데 길이는 696m란다. 면적이 7만3,000㎡인 이 광장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은 붉은 벽면의 크레믈린궁전이다. 중간쯤에 레닌묘가 있고, 끝자락에 시계탑이 보였다. 정면에는 양파모양의 돔으로 소문난 성바실리성당이다. 왼편으로는 러시아 국영 굼백화점이 길게 늘어서 있다.

붉은 광장의 레닌 묘소 뒤로 모스크바 시간을 알리는 시계탑이 우뚝 서 있다.

사실 입구를 막아놔서 그렇지, 이곳 붉은 광장은 크레믈린궁 정면으로 짜르의 포고나 선언, 판결이 내려지던 곳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은 돌아서 불편하게 들락날락하고, 푸틴 정도되면 궁에서 광장으로 직행할 것이다. 크레믈린궁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발걸음을 떼서 레닌묘로 간다. 피라미드 형태의 검은 화강암 입구로 사람들이 경건하게 들어간다. 마르크스와 함께 한 세기 가까이 세계인구 절반의 우상이었던 인물이다. 조금 더 걸으니 시계탑 사원이 나온다. 이 시간이 바로 모스크바 표준시라고 한다.

부조화의 조화로 이름난 성바실리 성당.

부조화의 조화인 성바실리성당 앞에는 사진 찍는 인파들이 끊이지 않는다. 양파 모양으로 된 여덟개의 돔이 제각각의 크기와 색깔로 봉긋 솟아있다. 성당이라기 보다는 동화속에 나오는 작은 성 같았다. 한바퀴를 돌아 나온 성당 앞에는 무슨 연설대 같은 것이 있다. 각종 집회와 공고 때 이곳 연단에 올라서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국영 굼백화점의 내부가 화려하다. 사방을 꽁꽁 틀어막은 우리네 백화점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굼백화점 안은 명품점 천지였다. 꽃장식도 아름다웠지만 백화점 중앙 통로의 천장은 하늘이 보이도록 투명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1층에 화장실을 만들지 않고, 시계를 걸어두지 않으며, 외부를 볼 수 없도록 막아놔야 한다는 백화점 기본원칙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한밤중에 붉은 광장을 다시 찾는 행운을 잡았다. 한편의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이었다. 조명은 또 다른 창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광장은 시장, 화재광장 등으로 불리다 17세기 말부터 붉은 광장으로 불리고 있다. 붉다는 의미의 러시아어는 ‘크라스나야’다. 이 말에는 아름답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 광장의 원래 명칭은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텐안먼 광장을 넘으면 쯔진청, 바로 자금성으로 이어진다.

이날 붉은 광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세계 3대 광장 모두를 답사했다. 베이징의 텐안먼(天安門)광장은 2002년부터 지난달까지 숱하게 다녔고, 이란 이스파한의 이맘광장은 2014년 1월 밟았다.

크기로 따지면 텐안먼광장이 최고다. 동서 500m, 남북 880m, 44만㎡ 크기인 이 광장은 1651년 설계됐고, 1958년 확장됐다. 100만명도 거뜬히 수용할 규모여서 경축행사 장소로 활용된다.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텐안먼 앞에 있으며, 광장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와 마오의 시신이 안치된 기념당, 주변으로는 혁명박물관과 중국역사박물관, 인민대회당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광장 오성홍기 게양대에서는 하루 두 번 게양식과 강하식이 열린다. 이 시간이 되면 천안문과 광장 사이 도로에 차량이 전면 통제되고, 한 무리의 군인들이 각을 맞춰 이 도로를 넘어온다. 그리곤 국기에 대한 의례를 집행하는데, 이 광경을 보기 위한 인파 또한 장난 아니다. 베이징에서는 방송에서 해뜨는 시각 대신 텐안먼광장 국기게양식 시간을 말해줄 정도다.

이스파한 이맘광장에서 마차행렬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스파한 이맘광장의 야간 분수가 물을 뿜고 있다.

16세기에 조성된 이란 이스파한의 이맘호메이니광장도 낮과 밤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옛날 폴로경기장이었던 이곳은 낮에 보면 ‘웅장하다’, 밤에는 ‘아름답다’는 단어로 압축된다. 특히 아치형 문 사이로 보이는 이맘사원 모스크의 야경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이 모스크는 메카 방향으로 세우느라 직사각형의 광장과 45도 방향이지만, 부조화를 무릅쓰고 신앙을 지킨 위대한 건물이기도 하다. 당초 ‘세상의 원형’이라는 의미의 ‘낙쉐자헌’ 광장으로 불렸던 이 광장은 1979년 이란혁명을 거치면서 이맘호메이니광장, 즉 이맘광장으로 불리고 있다.

텐안먼에서 이맘, 붉은 광장까지 모두 밟아본 이날 발바닥이 땅에 붙어있지를 못한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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