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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입력
2016.08.1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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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죽은 나무 한 그루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묵직해진 가슴을 달래기 위해 잠시 바깥바람을 쐬러 건물 옥상에 오른 길. 큰 호흡으로 몇 차례 숨을 고른 뒤 무심코 숲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본 풍경이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온통 짙은 초록빛의 향연인 반면 그 나무는 그렇지 못했다. 탄력 잃은 진회색의 몸체는 생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그런데 뭔가 따사로운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섭씨 36도가 넘는 한낮의 고온 탓인가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다시 시선을 모아 느낌의 실체를 살펴보았다. 스러진 한 그루의 나무 곁을 살아있는 수많은 나무들이 단단히 채워주고 있었다. 그 형상이 방금 전까지 무겁게 내려앉아있던 내 가슴을 슬며시 다독여주었다. 애처로이 삶을 멈춘 아픔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이 다한 모습 그대로 감싸 안은 채 더불어 어우러진 나무들은 ‘공존’이 주는 아름다움의 실체나 다름이 없었다. 평온의 기운이 이내 몸을 데웠다. 달리 바라보니 보이는 것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홀로 죽은 나무가 더 이상 외롭지 않음을 느낀 그날 오후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갔다.

‘만남과 풀림’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 상담아카데미에서 3박4일 동안 진행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틀째 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듯이 참가자들 모두 자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무너진 자존감을 되살리는 시간들이 다시 이어졌다. 한 방에 같은 팀원으로 모인 11명의 참가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의 초상들을 꺼냈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아픈 자신을 보듬고 살피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였다. 어렵게 꺼낸 ‘너’의 얘기에 가슴을 움직이고 다시 용기를 얻어 ‘나’를 보듬는 시간에 스스로 귀를 기울였다. 묻힌 감성이 깨어나고 자기정체성의 의미를 새로이 인식하는 귀한 시간이 기간 내내 이어졌다.

사람은 늘 사람 안에서 아프다.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의 관계 안에서 사람은 언제나 울거나 웃는다. 아프기 때문에 아픔을 멈출 희망의 끈을 쥐게 마련이고 웃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웃을 수 있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연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아픔으로 내재된 기억 따위는 없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 너무 아프니 살펴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해 엉키고 엮여 생긴 상처는 묻어둘 일이 아니라 풀어내야 할 과제이자 오히려 ‘자기’를 되살리는 역동의 기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자기를 만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만남’이 있어야 ‘풀림’이 있음을 알면서도 기억 속에 내재된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는 일은 몹시 두렵고 버겁기만 하다. 회피하거나 외면하면서 자연스럽게 잊히길 원하지만 세상 살아가면서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아픈 기억은 사실, 자신의 그림자처럼 영영 내칠 수 없는 동행의 반려이다. 힘에 겨워 무너지듯 슬픈 하루가 있다면 그것은 감출 일이 아니라 살펴야 할 ‘오늘’인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달리 바라보면 힘겨운 내 안에 ‘힘을 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기자신이 보이는 것이다.

곁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

전업사진가에서 사진을 활용하는 심리상담가의 길을 걷고 있는 최근의 내 인생화두는 이 문장 안에 집약되어 있다. 이미 들어선 이 길 위에서 지금 나에게 묻게 된다. 혹시나 어설픈 연민과 동정심으로 ‘너’를 바라보거나 상념 어린 자책감으로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을까.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우리 삶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제 얼치기 심리상담가이기보다는 그저 너와 나의 곁에서 함께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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