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이 아닌 ‘하얼빈’으로 잘못 말했다. 사진은 안중근 애국지사 우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가 + 히로뽕’의 합성어 및 준말이다. 인터넷 ‘나무 위키’ 사전에 의하면, 일종의 국수주의와 자국우월주의, 극단적 형태의 민족주의 등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서,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자국을 옹호하는 것을 말한다. ‘쇼비니즘’ ‘비뚤어진 애국심’과도 뜻이 비슷하다는 것인데, 히로뽕을 맞은 상태처럼 그런 것들에 도취되고 마비되어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 바로 ‘국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광복절 경축사를 보도한 어느 신문은 인터넷판 기사 제목에서 ‘애국심 도취한 국뽕 연설’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같은 신문의 인터넷판에 “구라·뽀록났다·공람·가압류…부끄러운 일본어 잔재 여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는 것이다. 히로뽕은 메스암페타민을 개발한 일본 제약회사의 영어 상품명(필로폰)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다.

우선 일본어에서 유래한 낱말을 쓰는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비교적 느슨하고 관대한 편이다. ‘아이스크림’ ‘햄버거’는 문제 삼지 않고 ‘구라’ ‘뽀록’만을 문제 삼는 관점과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북한에서는 요즘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를 각각 ‘에스키모’와 ‘다진 소고기와 빵’으로 부른다고 한다. ‘얼음보숭이’란 말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서 사전에서도 빠졌다는 것이다. ‘에스키모’는 아이스크림의 북한 상품명이라고 한다. ‘다진 소고기와 빵’의 경우 ‘다소빵’이라면 모를까 음절 수가 너무 많아서 불편하다.

‘국뽕’은 일단 어감상 ‘짬뽕’을 연상시킨다.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국뽕’이란 말에서 히로뽕을 곧바로 연상해내기는 힘들다. ‘짬뽕’이나 ‘짜장면’도 외래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각기 일본어 참뽕(ちゃんぽん)과 중국어 자쟝미엔(炸醬麵)에서 왔다는 게 맞는 듯하다. 하지만 붉고 얼큰한 짬뽕은 일본 참뽕과도 다르고 배고플 때 급히 후루룩 삼키는 짜장면은 중국 자쟝미엔과도 다르다.

음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일상적 의미로 ‘짬뽕’이란 말은 서로 다른 것을 뒤섞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국뽕이란 말은 일종의 짬뽕인 셈이다. 예외적인 식습관에 기대서 표현한다면 국뽕은 먹다 남은 짬뽕 국물에 먹다 남은 짜장면을 말아먹는다는 느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이 아닌 ‘하얼빈’으로 잘못 말했다. 이건 박 대통령 잘못이 아니라 연설문을 쓰는 비서의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거의 모든 점에서 일본 아베 수상과 정치적 입장이 같은 박 대통령으로서 그나마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다루지 않은 것만 해도 나는 큰 다행이라고 여긴다.

한편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조어들은 ‘헬조선’ ‘흙수저’ ‘갑질’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언론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런 보도가 맞는 거라면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1%’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1%’에 속한다는 사실이 이번에 들통나버린 셈이다.

99%의 개ㆍ돼지에 속하는 나는 이번에 박 대통령의 계급적 본질이 ‘뽀록’나버린 게 한편으로는 통쾌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국정원 및 ‘십알단’ 등의 인터넷 여론 조작 및 선거 개입 등이 지난 대선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1% 출신의 박 대통령은 ‘후로꾸’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이 폭로된 것은 아주 통쾌하다.

내가 씁쓸하다고 하는 이유는, 설령 1%에 속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란 점에서 어느 정도는 나머지 99%를 위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99%의 관점과 감각과 언어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마땅한 법인데 박 대통령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잠바때기’ 흔들던 친박의 여당 대표 당선도 국뽕이고, 리우 올림픽, 스마트폰과 K팝도 국뽕이다. 문제는 ‘가카새키짬뽕’의 상황이 십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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