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한국에 살며] 쉐이크쉑

입력
2016.08.12 10:38
0 0
지난달 22일 오전 강남에 1호점을 오픈한 미국의 프리미엄 수제버거 '쉐이크쉑' 매장 앞에 고객들이 몰려들어 붐비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2일 오전 강남에 1호점을 오픈한 미국의 프리미엄 수제버거 '쉐이크쉑' 매장 앞에 고객들이 몰려들어 붐비고 있다. 뉴스1

미국 햄버거 체인점인 쉐이크쉑(Shake Shackㆍ이하 쉑쉑)이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뉴욕 여행 때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서울에도 쉑쉑이 열린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일하는 동네가 주로 강남이라서 점심시간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처음 문을 여는 날 친구와 함께 쉑쉑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오늘은 먹지 못할 거라는 게 확실해졌다. 식당 앞에는 마치 공항에서 승객들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듯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해서 줄을 따라 끝까지 가 봤는데 식당이 있는 빌딩을 몇 바퀴 돌고 골목길로 들어가 신논현역까지 이어졌다. 직원에게 만약 지금 여기서 줄을 서면 언제쯤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대기 시간이 7시간 이상이라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7시간 이상 기다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행동인지 궁금했다. 다른 데서 점심을 먹으면서 계속 이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웃기고 다른 편으로는 슬픈 현상이었다.

맥도날드가 모스크바에서 가게를 처음으로 연 것은 1990년 1월 30일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가 너무나도 컸다. 맥도날드를 비롯해서 서양 비즈니스가 역사상 최초로 러시아 시장에 들어오던 시기였다. 공산주의를 추구하던 소련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맥도날드의 첫 상점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서방과 전쟁의 끝, 자본주의 시대의 개막, 민주주의의 징조와도 같은 의미였다. 그날 맥도날드 빅맥을 먹으려고 수천명이 몇 킬로미터씩 줄을 늘어선 건 그래서였다.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 일이 거의 없는 러시아 사람들인데 말이다. 대통령이 있는 크렘린궁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맥도날드 모스크바 시내점에 개점 첫날에만 3만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맥도날드 전 세계 지점 중 역대 최고의 기록이었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려고 늘어선 러시아 사람들의 사진은 전 세계 언론에 나왔고 이 현상에 대해선 비판과 호평이 뒤섞였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온 세상이 국경을 초월해 하나가 되어 평등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가 쏟아진 반면, 러시아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없길래 ‘거지 음식’으로 불리던 미국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어 보려고 몇 킬로미터씩 줄까지 서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 근대 역사에 있어서 자유를 의미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강남 쉑쉑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러시아의 현실을 고려하면 줄을 선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강남에서 벌어진 일은 납득하기 힘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쉑쉑 말고도 서울에서 햄버거를 파는 식당이 수백 개 넘게 있을 텐데 하루 종일 찜통더위에 고생하면서 줄을 서는 사람들의 심리는 과연 뭘까. 이 체인점은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아무리 유명해도 7시간 이상을 기다릴 만한가. 그날 인터넷 댓글을 보니까 기다리다 대기 시간이 오래 걸리자 뒷사람에게 말을 해 놓고 밥을 먹고 돌아와 다시 줄을 선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는 동안 다른 데서 밥을 먹고 돌아와 다시 줄을 서다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정신세계를 친구와 농담거리로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소비주의는 현대 한국사회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어 물질적인 소비를 하거나 서비스를 누리는 건 괜찮지만 적당한 수준을 넘으면 문제가 생긴다.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물질적인 집착을 갖거나 7시간 넘게 줄을 서는 것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소비주의가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보가 아닐까 싶다. 한국인들이 미국 대중문화를 지나치게 따르는 이유도 없지 않다. 과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햄버거 가게였다면 사람들이 7시간 넘게 줄을 섰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몸에 훨씬 더 좋은 삼계탕을 먹었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