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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반공소년 올림픽 관람기

입력
2016.08.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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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을 계기로 앞으로 신흥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지난 1일 기자들에게 한 이야기다. 경제 위기와 지카 바이러스 그리고 불안한 치안상태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선수촌이 화려하기는커녕 시설이 미비하다고 불만이다. 일부 선수들은 입촌을 거부했고 선수촌장에 대한 해임설도 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이 그렇게 특별히 문제가 있는 대회일까.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나는 겨우 만 여덟 살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에는 이미 텔레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뮌헨 올림픽에 참가했던 우리나라 선수 가운데 기억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 내가 어리기도 했지만 인상적인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크 스피츠라는 미국 수영선수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민망할 정도로 작은 삼각팬티를 입고 콧수염을 기른 스피츠는 금메달을 일곱 개나 땄다. 우리나라는 금메달이 하나도 없는데 한 사람이 일곱 개라니….

그런데 뮌헨 올림픽에 대해서는 특별한 나쁜 기억이 있다. 팔레스타인 게릴라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침입해서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고 살해했다. 이 사건은 내게 다시 한 번 반공의식을 고양시켰다. (팔레스타인 게릴라는 공산주의자들이 아니었지만 그때는 나쁜 놈들은 죄다 공산당인줄 알았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중계방송을 보지 않았다. 열두 살 소년에게는 중계방송보다 직접 공을 차고 노는 게 더 좋았다. 게다가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적자 올림픽’이라는 말이 뉴스에 나와서 흥미가 떨어졌다. 하지만 대회가 후반에 들어서자 흥미 있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 여자 배구팀은 소련, 동독, 쿠바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어떻게 하필 모두 공산국가와 한 조에 편성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소련과의 첫 경기에서는 졌지만 동독과 쿠바를 물리치고 4강에 올랐고,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세계 최강 일본에게는 졌지만 3, 4위 결정전에서 또다시 공산국가 헝가리를 물리치고 동메달을 땄다. 올림픽 구기종목에서 받은 대한민국 최초의 메달이란 점도 중요했지만 무려 세 개의 공산국가를 물리친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반공소년이었다. 결승전에서는 일본과 소련이 만났다. 우리나라를 강제로 지배했던 일본과 공산국가의 수괴 소련이 맞붙은 것이다. 누가 이겨도 기분이 나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민족감정보다는 반공의식이 더 강했다. 일본이 소련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며칠 후 나와 이름이 같은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경기 금메달을 땄다. 양정모는 몽골의 오이도프에게 졌지만 ‘벌점’이라는 희한한 제도 덕분에 1위가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도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지만(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단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대는 공산국가 몽골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는 내가 고등학생 때 열렸지만 기억에 없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그때 우리가 올림픽에 참가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전두환이라고 하더라도 광주에서 시민들을 그렇게 죽여 놓고 올림픽에 참가할 만큼 뻔뻔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당시 나는 광주사태는 공산당 폭도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제도 우리 교회의 어느 집사님은 우리 장인어른에게 그런 내용의 장문 카톡을 날리셨다. 제발 그러지 좀 마시라.)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대회 때 나는 이미 대학생이었다. 책만큼이나 텔레비전을 사랑하던 시절이었다. 올림픽을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다 봤다. 주경기장에서 왠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 느낌을 받은 것은 아마도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심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회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은 데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이 참가를 보이콧해서 반쪽짜리 대회로 열렸다.

그런데 그날 개막식에서 나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어떤 사람이 제트팩을 등에 매고 개막식장을 날아다닌 것이다. 그야말로 퍼포먼스 수준으로 그냥 “미국이 제일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는데, 그게 성공했다. 미국이라고 하면 통킹만 사건을 제일 먼저 떠올리던 내가 정말로 미국의 과학기술에 매료되었으니까 말이다.

LA 올림픽의 영웅은 단연코 유도의 하형주와 여자 양궁의 서향순이었다. 우리나라는 무려 7개의 금메달을 땄다. 이후로는 우리나라가 메달을 워낙 많이 따서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다. 내 주된 관심사는 경기에서 개막식으로 바뀌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막식은 당시까지의 모든 개막식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 같다. 거대한 차전놀이와 굴렁쇠를 구르던 소년이 기억에 남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개막식은 돈 잔치가 되었다. 무려 1,140억원이 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대표적이다. ‘붉은 수수밭’의 감독 장이머우는 오리엔탈리즘을 역이용해 중화주의를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스케일은 장대했고 각 장면은 화려했다. 그런데 그게 올림픽 정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016년 리우 올림픽의 개막식 비용은 단 50억원. 그렇다. 브라질은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개막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감명 깊었다. 화려하지만 슬픈 그리고 희망적인 브라질의 자연과 역사를 담았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표현했다. 나는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탁월함과 우애와 존중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보았다. 올림픽 정신은 힘과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조직위원회와 선수 그리고 리우 시민들이 서로에게 우애와 존중하는 마음을 맘껏 보여주기 바란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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