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 뱅크

더운 날씨만큼이나 힘든 것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이들을 어쩔 수 없이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주변 사람의 분노를 유발하는 재주를 가진 이들의 심리적 특징은 무엇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남들을 화나게 하는 이들치고 행복하고 만족한 사람은 없다. 본인이 혼자 불행하면 억울하니까 남까지 화나게 만들어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전가하려는 무의식적 소망에 휘둘리는 것이다. 가정문제가 심각하면, 직장에서 괜히 트집 잡는 상사를 상상하면 될 것이다. 남산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는 식이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큰일이다.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을 잡아 주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므로 결국에는 파괴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한 나라의 독재자부터 작은 조직의 장, 가족 내의 권력자들, 누구나 될 수 있다. 일단 이런 사람을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런 이들이 어느 조직에 가든 대개 있다. 대안이 있다는 보장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직에 남아 계속 방어적 태도로만 임해도, 자칫 부당한 대우에 길들 수 있다. 애초에 선을 넘는 이야기를 할 때 확실하게 지적해 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분노 유발자들은 오히려 움찔하고 조심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한 이들의 마음은 내적으로는 여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는 강한 면도 있다. 수세에 몰리기 전에, 미리 “피곤해 보이십니다. 중요한 일을 많이 처리하셨으니 대단합니다” 같은 말로 선수를 치거나, 자존감이 약한 분노 유발자들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슬쩍 도움을 청하며 너스레를 떠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물론 항상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열 받은 상대방에게 “스트레스가 많으시군요” 같은 말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유발할 수도 있다. “당신은 약하다”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놓고 화내지는 않지만, 사사건건 빈정대고 부정적인 코멘트만 하는 이들도 분노유발자들이다. 잘된 일은 언급 않고, 나쁜 것만 찾아내 지적한다. 언뜻, 날카로운 직관력을 자랑하는 것 같지만,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이들의 마음에는 스스로의 무능함, 부적절감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깎아내려야 그나마 자기 자신이 덜 못나 보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말에 상처받는 모습을 보이면, 이들은 더욱 기분이 좋아져서 더 조롱과 비난을 일삼는다. 이들 앞에서는 아예 상대보다 훨씬 더 과도하게 완벽주의를 보이는 것도 때론 먹힌다. 또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는 것을 빌미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려주는 것도 좋다. 예컨대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면, “다음에는 꼭 감과 배를 사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반응하는 식이다.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코멘트도 말라는 메시지다. 무능하면서 부정적인 사람들을 슬쩍 띄워 주면 단기적으로는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말로 자신이 유능한 줄 알고 끝까지 괴롭힐 수 있으니 잘 판단해야 한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한 장면. 방송 캡쳐

요령을 피면서 남이 거둔 성취를 슬쩍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이들도 분노 유발자들이다. 고생할 때는 자리를 비우다가, 생색낼 때는 슬그머니 나타난다. 이럴 때는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전략이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상대방이 잔꾀를 부리지 못하게 못을 박아 놓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 상냥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잔머리를 쓰는 분노 유발자들이 또 어떤 모략을 꾸밀지 예측 못 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게으름 피우는 중간관리자나 직원들은 사실 무능하기 때문에, 그들의 절박한 불안감을 읽어 주고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리더 자신이 무능하다면 대책이 없다.

분노 유발자 중에는 개인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개선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노동부나 국민고충 처리센터, 국민권익위원회, 인권위, 가족상담센터 같은 전문기관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노 유발자들이 ‘제도와 법’이란 껍질을 쓰고 조직적으로 약자들을 괴롭힌다면 심리적 대처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불의와 부조리로 가득한 독재국가에서 심리학적 조언은 종종 위선이자 영합이다. 긍정적 태도로 주어진 일은 뭐든 즐겁게 해내라고 요구하면서, 권력이나 돈에 아부하는 변질된 긍정심리학은 강자에게도 장기적으로는 해악이다. 조직이 결국 안으로부터 붕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누군가에게는 을이다. 바깥에서 큰소리치는 이들이 집에서는 꼼짝 못 할 수 있고, (물론 거꾸로도 많다) 직원에게는 매몰찬 사장님이 대기업이나 공무원에게 받는 모멸감을 견디며 산다. 약소국 독재자들은 강대국이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분노유발자란 것은 모른다. 작은 조직도 마찬가지. 분노유발 리더들은 자신 때문에 조직이 흔들린다는 것은 모르고 “조직의 미래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라고 사뭇 비장하게 말한다. 코미디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