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rust)란 금속이 부식되어 슨 녹을 뜻하니까 러스트 벨트는 ‘녹슨 지대’로 번역된다. 일찍이 철강업 등의 제조업이 번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해버린, 미국의 북동부에서 오대호 부근을 거쳐서 및 중서부에 이르는 지대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일자리가 없어서 인구가 줄고 도심이 황폐해지고 도시가 쇠퇴하는 현상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이 말은 198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중반 넘어서까지 한창 번성할 때에 이 지역은 ‘제조업 지대’ ‘공장 지대’ ‘강철 지대’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선을 100일 남겨둔 지난 주말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이 지역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미국 대선은 많은 주가 선거인단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한 정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경합주(swing state)의 판세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경합주들의 절반 정도가 러스트 벨트에 속한다.

이 지역에서 제조업이 쇠퇴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지역에서 생산하던 제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만 부차적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맺은 각종 무역협정이 기존의 무역 장벽을 없애는 바람에 이 지역 제조업의 쇠망과 몰락이 약간 가속화된 것일 따름이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 폐기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등을 내세우고 있다. 브렉시트에 빗대어 말하자면, 트럼프는 아멕시트(Amexit)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힐러리 대 샌더스에서는 샌더스를 열렬히 지지했지만, 힐러리 대 트럼프에서는 트럼프를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미국 러스트 벨트를 포함해서 모든 경합주를 트럼프가 싹쓸이하기를 빈다. 나아가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를 빈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보호무역주의 공약에 따라서 한미FTA를 폐기하자고 나설 것이다. 우리는 냉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수많은 촛불 시위로도 막아내지 못했던 한미FTA를 트럼프가 아주 쉽게 없애줄 게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 미군의 주둔을 위해서 한국 정부, 그러니까 결국에는 한국의 모든 납세자에게 돈을 내라고 거칠게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돈이 없다고 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흙수저 청년 실업자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정부 예산이 거의 없으니까 그 말은 진실이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화끈한 성격으로 봐서 곧바로 주한 미군을 철수시킬 게 틀림없다. 수시로 한반도에 들락거리던 미군의 핵 항공모함, 핵 잠수함, 전략 핵 폭격기 및 그 지겨운 ‘사드’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북한은 더 이상 명분이 없게 된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남한과 평화협정을 맺게 된다.

더 나아가 북한은 남한 기업에 대해서 시장을 개방하게 된다. 성장 동력을 애타게 찾던 남한 기업은 사내 유보금으로만 쌓아놓고 있던 자금으로 투자를 대폭 늘려서는 말이 통하는 북한에 진출해서 사업을 벌인다. 북한으로서는 일자리와 소득을 얻고, 기술을 배우며, 기업 경영 노하우를 익히게 되고, 한국 기업들을 통해서 세계 시장에 접근할 기회를 얻게 된다. 또,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북한 실정에 맞는 산업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렇게 한 십 년쯤 지나다 보면 통일은 저절로 된다. 각각의 체제를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의 통일 말이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서 내 전두엽이 녹고 있기 때문에 생긴 망상이기는 하지만 100% 망상인 것만은 아니다. 힐러리든 트럼프든 누가 되든 간에, 우리도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프랑스처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3자 구도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첫 투표에서 2등 할 수도 있으므로, 새누리당 의원들도 찬성할 것이다.

그렇게 술술 잘 풀린다면, 남는 문제는 후보가 누구냐 라는 건데, 결국 샌덤프가 필요하다. 공약은 샌더스인데 완주는 트럼프처럼 하는 후보 말이다. 아, 깜빡했는데, 이번 기회에 검찰총장도 직선제로 뽑기로 하자. 후음… 그래도 덥구나 더워.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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