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박사과정을 밟던 대학은 미국 대도시의 전형적인 슬럼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슬럼가 하면 언뜻 무서운 광경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 그곳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은 퍽 선량하고 평범했다. 다만, 그 지역 갱들 탓에 강력 사건이 이따금 발생했던 건 사실이었다. 하루는 필자가 살던 아파트 입구에 강도 사건 보고서가 하나 붙어 있었다. 비교적 자주(?) 봤던 일이니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그 보고서 지면에 어떤 사람이 붉은색으로 적어 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묘사된 곳 중 하나에 “이 정보는 불필요하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은 용의자가 흑인(Afro-American)이라는 정보였다.

범인 인상착의를 알리는 데 필수적일 것 같은 이런 종류의 정보는 사실 큰 폭력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흑인을 특정 성격의 집단으로 범주화하는 효과를 낸다. 이런 관행이 계속되면, 어느덧 슬럼가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다 흑인 짓이라는 관념이 자리 잡힌다. 평범하고 선량한 흑인도 이제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결과 개인으로서의 흑인은 하나의 집단적 이미지를 짊어진 채 일상을 살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가 사회에서 소외될 가능성은 커지고, 그만큼 반사회적 행동, 즉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위와 같은 범주화는 개인에게 폭력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익하지 않다.

종족이나 종교 등을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범주화하는 관행은 물론 근대 사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관행은 전근대 시기 전쟁이나 여타 갈등의 폭력성을 배가시키는 근원이었다. 11세기 말 성지회복이 일차 목표였던 유럽의 십자군이 유대인과 사라센인을 학살했던 사실은 그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 하지만 전근대 시대 범주화가 야기한 폭력은 대체로 일상의 영역에까지 침투하지는 않았다. 그 폭력은 전쟁과 같은 예외적 시기의 일이었다. 물론 유럽의 17세기처럼 그 예외가 항구적 상태가 된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즉 산업화와 대규모 이주 등으로 거대하고 다양한 인구가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한 이후에야, 범주화와 폭력은 특정 순간을 넘는 일상의 문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는 국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서양 국가들은 그 주민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 국가는 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빈부 격차 및 계급 갈등을 완화하고자 복지 정책을 추진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필요했다. 둘째, 당시 식민지 쟁탈전 등 국력경쟁의 열쇠였던 주민 동원의 효율성을 위해 국가는 그들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파악해야 했다.

전인구를 대상으로 수집된 정보의 양과 종류는 거대하고 다양했기에, 국가는 이를 행정에 이용할 수 있도록 단순화해서 분류하는 작업, 즉 몇몇 주요 범주들로 묶는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국가는 우선적으로 인종과 민족, 그다음으로는 계급이나 소득 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범주들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주민들의 건전한 정신 상태를 확인한다는 명분아래, 체제나 국가에 대한 지지, 순응, 도전, 전복 등의 정치적 범주로 그들을 나누기도 했다. 보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러한 범주의 판단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가계, 이력, 정치 활동 내역, 해외 거주 여부 등의 정보가 적극적으로 수집되었다. 서양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이즈음 탄생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결과 국가는 주민 하나하나를 개별적 주체로가 아니라, 특정 범주에 속한 객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주민 범주화는 언론을 통해 사회로 번졌고 일상생활에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앞서 든 미국 사회의 예처럼, 일상의 폭력을 경험하게 된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폭력이 전쟁과 경제위기와 같은 혼란의 순간에는 집단 광기로 전화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기의 민족학살, 냉전과 탈식민주의 시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의 체제반대자 집단처형, 그리고 냉전 이후 유고 내전 등에서의 인종청소는 국가와 사회의 인간 범주화 관행이 빚어낸 결과물 중 최악의 것들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테러의 여름’이라고 칭한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이 사건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우리 사회에 전달되는 방식 역시 못지않게 불편하다. 최근 뮌헨 총기 난사의 범인은 독일 국민을 넘어 이란계라는 범주로 묶였다. 뷔르츠부르크 통근 열차 사건 범인도 난민보다는 아프가니스탄 국적이라는 사실이 더 부각되었다. 미국 올랜도 나이트클럽의 총기 난사도, 프랑스 니스의 트럭 테러도 모두 해당 국가 시민의 범죄였지만, 그들의 이슬람 배경만이 강조되었다. 이런 태도는 그 사건들만큼이나 폭력적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테러의 공포가 세계 정치의 우경화 경향과 맞물리고 있는 오늘날에는 특히 더 그렇다.

노경덕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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