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가치는 수출 경쟁력을 크게 좌우해

원화는 대 美 달러화 빼고는 고평가 돼

시장개입 대신 적극적 통화증대 정책을

세계경제 파이가 과거만큼 빠르게 커지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글로벌경제의 이런 무기력한 모습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열겠다고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평가절하에 나서는 나라들이 잇따른다. ‘통화전쟁’으로 불리는 현상의 배경이다.

통화 평가절하(환율 상승)는 글로벌시장에서 자국 수출상품 가격을 다른 나라의 유사 수출품에 비해 낮춤으로써 경쟁력을 높인다. 대신 수입 상품의 국내 가격이 높아져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훼손해 내수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준다. 또한 모든 나라가 수출 증대를 위해 통화 평가절하 정책을 쓸 경우, 국제무역 전체를 둔화시켜 모두에게 손해를 안길 수 있다.

한국 정부도 다른 나라들처럼 원화 절하정책을 가동해야만 할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원화 가치가 현재 저평가 상태인지 고평가 상태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원ㆍ달러 환율과 함께, 원화와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 간의 교환비부터 살펴보자.

2014년 이래 달러는 사실상 모든 다른 통화에 대해 강세를 유지해 왔다. 미국 경제가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미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기대감도 달러 강세의 요인이 됐다. 또 글로벌경제의 요동에 비춘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안정성도 영향을 미쳤다.

통화가치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하는 ‘빅맥 지수’다. 빅맥 지수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대표상품인 ‘빅맥’의 각국 판매가격을 달러로 환산해 비교한 수치다. 이에 따르면 원화는 달러에 비해 27.2% 저평가됐다. 반면 다른 수출경쟁국들의 달러 대비 통화가치는 원화보다도 훨씬 저평가된 상태다. 중국 위안화는 45.6%, 대만 달러는 33.2%. 브라질 레알화는 32%나 저평가됐다. 유로화가 18.9%, 일본 엔화는 무려 36.9%나 저평가된 상태다. 결국 원화는 달러에 비하면 저평가, 다른 대부분의 수출 경쟁국에 비하면 고평가 상태다.

시장경제국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위해 노골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진 않는다. 대신 중앙은행이 통화와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양적 완화(QE) 방식을 활용한다. 다른 상품처럼 통화 역시 공급이 늘면 가치가 하락한다. 통화 절하가 핵심 목표는 아니었지만 Fed도 세 차례에 걸친 QE를 단행했다. 유로존에선 QE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는 곳도 많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공식적으로는 유로화 가치절하가 QE의 목표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지속적 QE를 통해 글로벌 통화전쟁에 동참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 왔다.

중국 인민은행은 다른 어떤 중앙은행보다 많은 QE를 단행했다. 지난 수년간 인민은행의 통화량 증대는 미국 Fed보다 빨랐다. 지난해 8월 수출 둔화가 나타나자 위안화 가치를 3% 가까이 평가절하했다. 중국의 수출 둔화는 근년의 대규모 QE를 통해 독일과 일본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함으로써 중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 탓이다. 중국 평가절하는 곧바로 베트남과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각국의 통화 절하 경쟁에 불을 붙였다.

통화가치를 낮추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우선 QE를 시행하고, 이어 기준금리를 0%에 가깝게 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리는 것이다. 이런 과정의 주목적은 경기활성화이지 통화 평가절하는 아니다. 하지만 부수적으로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

현재 한국의 모든 경제지표는 추가적 경기 자극조치가 필요함을 가리키고 있다. 기준금리는 훨씬 더 낮아져야 한다. QE도 시행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적절히 시행되면 경기는 활성화 하고, 원화는 더욱 절하될 것이다. 그 최후의 조치가 마이너스 금리일 것이다. 여러 차례 지적했듯, 마이너스 금리는 그동안의 통화정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채택하긴 어렵겠지만, 극적인 원화 평가절하 효과를 가질 것임은 분명하다.

/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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