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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괴담(怪談)과 그 조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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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괴담(怪談)과 그 조력자들

입력
2016.07.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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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 냄새 풍기며 번지는 참언(讒言)

그나마 과학으로 거짓을 무너뜨려야

전자파 논란 넘어 본질적 고민할 때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ㆍ사드) 배치에 대한 경북 성주군의 반발이 염천처럼 뜨겁다. 21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전세버스 50대로 상경한 2,000여 군민이 사드 배치 반대집회를 열었다. 점심을 먹으러 잠깐 동안 밖에 나가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지독한 더위에, 전체 군민의 20분의 1 가까운 사람들이 땡볕을 무릅쓰는 현실이 안쓰럽다. 이들의 열띤 반대가 상당 부분 ‘전자파 괴담’의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성주 배치 공식 발표 며칠 전부터 X밴드 레이더가 내뿜는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과 농작물 피해 가능성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SNS)에 떠돌았다.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이야 해묵은 것이지만 농작물 피해, 특히 ‘성주 참외’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내용은 새로웠다. 작황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전자파 오염 참외’가 시장의 외면을 받을 거란 전망까지 담겼다. 건강과 참외 농사를 함께 망치리란 참언(讒言)은 가난한 농촌을 흔들고도 남는다.

참언이나 괴담은 대개 음모의 냄새를 풍긴다. 12세기 고려 인종(仁宗) 때의 이자겸(李資謙)의 난에 앞서 세간에는 ‘십팔자가 왕이 되리라(十八子爲王)’, 즉 이(李)씨가 왕이 되리란 참언이 떠돌았다. 분명한 의도와 목적에서 비롯한 괴담은 적극적 동조자는 물론 특별히 동조하진 않더라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는 사람, 그저 퍼뜨리는 재미를 즐기는 사람 등에 의해 전파(傳播)된다. 전파 속도는 통신수단에도 달렸지만, 수용자 태도가 관건이다. 현재의 ‘사드 괴담’에서 보듯 정부의 소통노력이나 정책결정 절차에 대한 의문이 수용 태도를 좌우한다.

그런데 사드 배치라는 정책의 속성에 비추어 사전 소통과 설득, 절차의 투명성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대신 괴담의 생성과 전파는 관심사지만, 적극적 생성ㆍ전파자를 확인하기란 바다에 빠진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다만 과학적 잣대를 활용해 괴담을 차단하려는 적극적 노력을 방기하거나 과학조차 100%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결과적으로 괴담에 편승한 소극적 전파자의 책임은 뚜렷하다.

대표적인 게 사드 레이더 전자파의 악영향 범위에 대한 논란이다. 레이더로부터 100m 이상 떨어지면 인체에 직접적 위험이 없다는 국방부의 설명을 반박한 주된 근거는 인원ㆍ장비 통제 범위를 명시한 미군 교범이었다. 실수인지 의도적 왜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교범 오역이 성행했다. 교범은 지상과 상공의 통제범위를 함께 표시하면서 3.6㎞까지를 ‘관계자 외 출입금지’구역으로 명시했다. 관계자도 출입할 수 없는 100m까지의 절대금지 구역과 비교해 건강 피해 방지가 아닌 보안 목적의 통제임이 분명한데도, 국방부 설명과 다르다고만 지적한 보도가 잇따랐다. 심지어 전자파가 방출되는 공중의 항공기 통제범위, 즉 5.5㎞까지는 전자기적 폭발장치를 가진 전투기 등 항공기를 통제하고 2.4㎞까지는 ‘전자기 교란 가능성이 있는 모든 항공기’를 통제한다는 내용을 들어 인체 유해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여객기 이착륙 때 휴대폰 전자파 방출조차 막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괌 미군기지의 전자파 실측 후 사드 괴담은 많이 잦아들었다. 출력과 주파수를 공개하지 않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일부 볼멘소리만 남았다. 그런데 X밴드 레이더의 주파수는 통상 8~10G㎐라고 하고, 일본의 동종 레이더 전자파 실측자료에는 1~12G㎐로 적혀있다. 적외선(IR)에 한참 못 미치는 주파수다. 주파수와 함께 전력밀도(전자파 강도)를 좌우하는 출력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전력밀도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점에서 1㎞만 떨어지면 절대통제구역의 100분의 1 이하로 낮아진다. 교토 교가사키기지와 함께 일본 양대 AN/TPY-2 레이더 기지인 아오모리현 샤리키기지 1㎞ 앞에 어촌과 해수욕장이 있다는 사실도 참고가 될 만하다.

더는 전자파 괴담에 귀 기울이지 말자. 대신 사드 배치의 외교안보 영향 등에 관한 보다 근본적 논의로 되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주필 /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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