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분야에서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마지막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하는 이유가 뭘까, 이제는 조금 더 심층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지적 수준,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경쟁적 교육환경, 아침저녁 없이 돌아가는 작업환경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노력을 많이 하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무능 정권, 부패 공무원과 정치인, 이기주의 등을 들 수 있다. 한데 이런 현상을 관통하는 심리적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전근대적 가족주의와 근대적 자아개념의 부족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우선 가족주의를 보자. 대부분의 부패 지도자 뒤에는 가장의 부정을 은근슬쩍 부추기고 특혜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가족이 있다. 관행처럼 부정을 저지르는 이른바 패밀리에 일단 속하면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귀족의식과 특권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기업, 사학을 비롯해 사회공헌이나 환원을 외치는 각종 재단 역시 다 가족 차지다. 여러 가지 사회공헌 사업들은 이른바 돈세탁의 도구로 오용되고, 가족들에게 은근슬쩍 재산을 상속하는 세금포탈 장치로 쓰인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유교의 이데올로기를 이상하게 해석한 탓일까. 그 극단이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지만, 대한민국에서도 김일성 정권 못지않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리가 남이 가”라는 기치 아래 자신의 주변과 가족만 챙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고집스러운 온정적 가족이기주의에 빠져있으니 더 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한다.

두 번째 숙제는 근대적 합리성에 근거한 자아개념의 확립이다. 중세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의 주관과 선호가 확실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하느님이나 교회의 뜻만 따르거나, 맹목적으로 군왕에 충성하면 그것이 바로 개인이 성숙하고 훌륭하다는 지표였다. 근대에 이르러서 이런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바뀐다. 부패한 교회, 독재적 군주제도의 폐해에 대한 민중들의 각성과 혁명으로 훌륭한 귀족 가문이나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개인적 의견과 호불호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들이 선거를 통해 또 다양한 언론 통로로 각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된 것이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민주주의는 공짜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구미 열강이 혁명과 전쟁으로 개인의 자유를 쟁취한 것처럼 한국도 4ㆍ19 혁명에서 올 4월의 선거혁명까지 민중들의 역량이 확장되고 결집하였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짧아서인가. 합리성보다는 감정적 판단이 앞설 때가 많고, 독립적인 주관과 선택보다는 여론이나 대세몰이에 휘둘리는 경향이 많다. 집단 지성은 때로 훌륭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집단 사고나 행동은 합리적이기보다는 정반대로 나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토론과 독서를 통해 냉철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그 집단은 언제든지 나치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처럼 변한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토론하고 분석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쌓아가기보다는 수동적으로 기성세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니 합리적 개인의 탄생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이처럼 주변만 챙기려 하는 가족주의와 집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해나갈 개인적 의지가 결여된 약한 자아는 결국 패거리 집단에 기댄다. 극단적 이념집단들은 똘똘 뭉쳐 상대방을 철저하게 물어뜯는 늑대 떼가 되기도 한다. 특정 학교, 지역 출신들이 모여서 문제의 핵심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것. 타 종교를 무시하고 박해하는 것 등도 모두 집단주의의 폐해라 할 수 있다.

일단 이런 기류에 편승하면, 소위 “남이 아닌 우리”가 저지르는 부정직과 무능은 덮고, 상대방의 단점과 실수만 끝까지 파헤친다. 사감을 넘어서는 합리적인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내부고발자’ 들이 엄청나게 핍박을 받고, 자기가 속한 집단에 먼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들을 ‘배신자’라고 폄하한다면 죄 없는 여성들을 화형에 처한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르지 않다.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큰 재산을 일군 이들과 가족들이 부자들을 두둔하는 권력자들과 유착돼 끝없이 부정직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으면 세상은 결국 악인들의 것이라는 염세론과 회의주의에 빠지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치부가 세상에 알려지고 문제가 되는 것 자체가 스마트폰과 SNS 등 각종 테크놀로지 발달과 함께 민중의 역량 축적의 증거가 아닐까.

그 길고 긴 군사독재 시대에는 그 많은 부정부패 세력에 대해 우리가 지금처럼 함부로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그나마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일을 벌리고 있는 권력층에게 매운 독설을 퍼붓는 댓글들을 보면서, 한국의 민중들이 일회성 분노가 아닌, 지속적으로 독단적이고 오만방자한 권력자들에게 죽비를 계속 내리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어쩌면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중세적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근대적 개인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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