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 현장] DDP서 ‘wkf tkfwl?’(잘살지?) 전… 인간 김광석 만날 수 있어

'영원한 가객' 김광석이 1995년 10월 늦은 가을 밤 팬들과 PC통신으로 대화를 나눴던 모습이 담긴 화면. 사진 양승준 기자

‘지금 (박)학기 기다리고 있어요’. 1995년10월29일 오후10시55분. 가수 김광석(1964~1996)은 가을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그의 팬들과 실시간 채팅을 하고 있었다. PC통신업체 나우누리 안에 만들어진 김광석 팬 카페 ‘둥근소리’ 회원들과 ‘아내가 옆에 있어요’라며 격의 없이 얘기를 주고 받다 팬이 올린 첼리스트 요요마 공연 관람 후기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김광석은 박학기와 ‘당구 치러 가요’란 글을 남긴 뒤 대화방을 떠났다.

20년이 흐른 2016년 7월15일 오후6시. 김광석이 그의 팬들과 나눈 소소한 대화들이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둘레길 쉼터 한쪽 벽면에 파랗게 영상으로 되살아났다. 자신도 모른 채 대화 속 주인공이 된 박학기는 얼떨떨한 눈치다. 20년이 흘러 온 친구의 흔적을 지켜보던 박학기는 기자와 만나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와의 추억을 건넸다.

“전 당구 200점을 쳤고, 광석이는 100점인가 150점인가 그랬어요. 사람들은 광석이를 아날로그형 인간으로 생각하지만, 아녜요. 공연 영상을 CD로 구워주며 디지털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기기 다루는 것도 능숙했죠. 그 때 우린 그런 거 몰랐거든요. ‘맥가이버칼’ 가지고 다니며 조립하는 거 좋아했고….”

‘wkf tkfwl?’. 고 김광석이 1995년 12월31일 팬카페 둥근소리 게시판에 남긴 마지막 글 제목이다. 한글 자판으로 치면 ‘잘 살지?’란 뜻이다. 장난스러운 제목처럼 김광석은 지인들 사이 ‘분위기 메이커’로 통할 정도로 웃음이 많았다. DDP 제공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기획돼 9월11일까지 열리는 고인의 추모 전시의 제목은 ‘wkf tkfwl?’다. 김광석이 1995년 12월31일 오전 2시3분 둥근소리 게시판에 남긴 마지막 글 제목으로, 한글 자판으로 치면 ‘잘 살지?’란 뜻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상념과 방황을 노래한 ‘영원한 가객’이 남긴 글을 보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다시 안부를 묻는 듯하다.

‘민석아 나다 광석이. 널 보면 나이든 내가 바보 같구나. 맑아서 니가 좋다. 오늘 송년회라는 명목으로 친구들과 술 한잔 했는데 왜 니 생각이 나던지. 민석아 잘 지내. 도대체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만 빌게.’ (‘wkf tkfwl?’ 중)

장난스럽게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던 김광석은 식구들 사이에서도 ‘익살꾼’으로 통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광석의 둘째 형 김광복씨는 “광석이가 5남매 중 막내였는데 우리 집 분위기 메이커였다. 장난이 엄청 심했다”며 웃었다. 일상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음유 시인’의 알려지지 않은 구수한 뒷모습이다.

동료들은 김광석을 ‘아재 개그의 달인’으로 추억한다. 김광석과 함께 그룹 동물원에서 노래한 박기영은 동물원 1집을 낸 1988년 대학로에서 공연을 마친 뒤 술을 마시기 위해 김광석의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다 생긴 일화를 들려줬다.

“광석이 형이 살짝 술에 취해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께 ‘아저씨 우리 동물원예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당연히, 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 대꾸가 없었죠. 광석이 형이 재차 물으니 그 때 기사 아저씨께서 ‘전 창경궁입니다’라고 말한 게 기억이 나네요. 광석이 형, 엉뚱했죠.”

김광석이 1995년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빌려 준 기타는 기타 유명브랜드 M사의 로고가 박혀 있지만 모조품이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정가의 20분의 1”을 주고 샀단다. DDP 제공

전시장엔 김광석의 손때가 묻은 기타도 놓여져 있다. 김광석이 1995년 12월 미국에 살던 친구 이용구씨에게 노래하고 놀라며 빌려 준 기타다. 기타 유명브랜드 M사의 로고가 박힌 이 기타엔 사연이 있다. 김광석에게 ‘사랑했지만’을 작곡해 준 가수 한동준은 “우리가 그 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며 “기타를 사러 광석이와 같이 갔는데, 실제 M사 기타 20분의1 가격의 모조품을 산 것”이라고 기타에 얽힌 얘기를 들려줬다.

김광석은 ‘달동네’로 불렸던 동대문구 창신동에 살던 가난한 음악가였다. 악기 살 돈이 넉넉하지 않던 그는 값싼 기타를 들고 공연장을 누비며 ‘이등병의 편지’와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김광석의 소박함과 작은 것도 함께 나누려 했던 마음을 잘 아는 친구 이용구씨는 김광석 추모 전시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20년 전 받았던 기타를 다시 고인 측에 돌려줬다.

‘wkf tkfwl?’ 전시에선 가요계의 신화가 돼 버린 듯한 ‘가객’ 김광석은 없다. 대신 누군가의 어리광 많은 동생이자 동네 형 같은 ‘인간 김광석’이 전시장을 메운다. 벽에 걸린 그의 공연(1991~1995) 사진이 유독 친근해 보이는 이유다.

“사랑했지만~.” 배우 장현성은 1995년 극단 학전에서 배우 생활을 하며 김광석의 공연을 즐겨 본 추억을 떠올리며 이날 전시 오프닝 행사에 깜짝 등장해 ‘사랑했지만’을 열창했다. 김광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김광석은 짧은 시간에 참 우리에게 많은 걸 주고 간 거 같아요. 그의 노래도 좋지만, 공연에서 그가 했던 꾸밈없고 순박한 말들을 가끔 영상으로 돌려봐요. 힐링을 하는 거죠. 전시회 사진 찍어 제 페이스북에 올려 두려고요, 하하하.”(관객 정진수씨, 64)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광석은 '영원한 가객'으로 불리며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학전 제공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