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이어 서울대서도... 집단 성희롱 반복되는 까닭은

성희롱 가해자 대부분 학과 동료
끈끈한 관계로 암묵적 비밀 요구
채팅하며 다 같이 죄의식 깨뜨려
신체접촉 없는 성희롱 처벌 애매
판사의 시각에 따라 결과 달라져
“올바른 성 의식 등 뿌리 내려야”
게티이미지뱅크

고려대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 만에 서울대에서도 남학생들이 온라인 채팅공간을 통해 여학생들을 집단 성희롱한 일이 발생했다. 비밀주의와 유대관계에 기댄 단체 채팅방에서 나누는 밀실 대화가 타인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성폭력의 온상이 됐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산하 학생ㆍ소수자인권위원회와 인문대피해자대책위원회는 11일 ‘서울대 인문대학 카톡방 성폭력 고발’이란 제목으로 인문대 A반 남학생들의 단체 카톡방을 공개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A반 남학생 8명은 지난해 2~8월 단체 채팅방에서 다수의 동기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적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여자가 고프면 신촌주점 가서 따라”, “정중하게 속옷을 보여달라고 요청해봐” 등 여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XX는 정말 묶어놓고 패야 함”이라고 말하는 등 여성혐오 인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대학사회에서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이 불거진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고려대에서는 여학생들과 교양수업을 함께 들은 남학생들이 성폭행을 연상케 하는 대화(▶ 고려대 집단 성희롱)를 주고 받아 물의를 빚었고, 지난해 2월 국민대에서도 축구소모임 남학생 30여명이 여학생들을 품평하는 등 음담패설을 일삼아 온 사실이 밝혀졌다. 시기와 주체만 다를 뿐 대학에서 여성 동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단체 채팅방이 성희롱 도구로 자리잡은 것은 채팅이 또래문화를 공고히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온 탓이 크다. 앞선 사례 대학들의 성희롱 가해자들은 모두 학과 선ㆍ후배나 동기 사이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이는 위계질서가 훨씬 강한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채팅방은 암묵적 비밀이 요구되는 ‘우리끼리’란 전제 아래 하위문화를 만들 수 있는 특수 공간으로 작동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정모(28)씨는 올해 초 여사원을 제외한 단체 카톡방 멤버로 초대된 이후 음란동영상이나 사설정보지 등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이씨는 “방을 나가도 다시 초대해 같이 어울리기를 강요했다”며 “상사들이 즐비한 채팅방에서 나 혼자 깨끗한 척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

유대관계가 한층 깊어지면 언어폭력 수위는 더욱 세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채팅공간이 하나의 사회적 소집단이 된 만큼 현실 세계와 별개의 성 윤리와 가치관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해 학생들의 대화 패턴을 보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며 “동료를 향한 연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다 같이 깨뜨려 죄의식이 없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사 사건이 반복되면서 대학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나 법적 처벌조차 쉽지 않다. 성추행과 달리 신체접촉이 없는 성희롱은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 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처벌 기준이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검사, 판사가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고의성 여부와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 등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와 일선 수사기관도 혼선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근본적으로 성ㆍ인권 의식과 양성평등 문화가 뿌리 내리지 않는 한 재범방지를 목적으로 한 일벌백계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온라인 범죄는 전파속도가 빨라 신상털기 등 2차 가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바람직한 온라인 소통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공동체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댈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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