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부를 결정지을 영국 국민투표 D-3를 앞두고 지난달 19일 런던의 의사당광장 앞에서 열린 잔류 캠페인에 참석한 시민들이 EU 깃발과 유니온잭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가 일파만파의 파문을 낳고 있다. 우선 브렉시트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유럽연합 탈퇴의 방아쇠를 당긴 영국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혼돈에 빠졌다.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은 서로 손해를 입지 않으려는 국가 이기주의가 확산하여 상호파괴적인 내분에 휩싸였다.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이 예측불허의 등락을 거듭하며 유럽경제를 무력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유럽경제가 표류하기 시작하자 세계경제가 방향감각을 잃어 불확실성에 빠졌다. 자국경제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보호무역주의와 국수주의가 고개를 들어 각국 사이에 경제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편 브렉시트는 민주주의 정치의 공황사태를 빚고 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영국의 정치판은 아수라장이다. 국민투표의 결과가 탈퇴로 나오자 영국국민들은 제2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치인들에게 속았다는 것이다.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등 정치인들은 브렉시트를 탈퇴하면 이민자들의 유입을 막고 유럽연합 분담금을 국민건강보험에 쓰겠다는 등의 공약을 남발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결과가 탈퇴찬성으로 나오자 이들은 공약의 이행을 보장 못 한다고 발뺌을 했다. 국민의 불신이 고조하자 유럽연합 탈퇴진영과 잔류진영이 함께 정치 허무주의를 낳고 동시에 퇴진해야 했다. 새 총리와 집권당이 어떤 노력을 해도 유럽연합 탈퇴를 수습하는 일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브렉시트의 발생원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브렉시트는 사회 양극화에 대한 영국국민의 정치반란이다. 국민투표에서 저소득층, 저학력층이 유럽연합의 탈퇴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휩쓴 신자유주의는 국경이 없는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을 기본이념으로 했다.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유럽연합 가입을 재촉했다. 그리고 고학력의 기득권세력을 특권과 부를 누리는 수혜계층으로 만들고 저학력의 노동자들을 실업과 빈곤을 겪는 피해계층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인기영합주의가 유럽연합 탈퇴에 불을 질렀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과 영국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하는 재협상을 벌이고 유럽연합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할 것을 재집권의 공약으로 제시했다. 영국국민들은 국민투표를 유럽연합 탈퇴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는 노동과 교육 등의 양극화가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 그리고 정치의 인기영합주의 파행은 상식을 벗어날 정도이다. 노동시장의 경우 실업자와 취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 원청업체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 사이에 서로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처우가 다르다. 교육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돈이 있어야 사교육을 받고 원하는 대학을 간다. 돈이 없으면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당선과 집권을 위해 이념, 지역, 계층 등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을 불사한다. 또 선심 공약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일을 당연시한다. 최근 경제가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다. 서민과 노동자들의 분노와 좌절이 보통 큰 것이 아니다. 이에 따라 지난 4ㆍ13총선은 뜻밖의 여소야대 결과를 낳았다. 내년 대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신자유주의는 빈부 양극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모순을 내포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자본주의경제의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과 기득권층 중심의 현행체제를 유지할 경우 노동자와 서민계층이 무너져 사회분단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한시바삐 신자유주의 방식의 경제운용을 지양하고 고용창출과 소득분배를 중시하는 포용적 성장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교육제도를 바꾸어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갖고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개혁이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정치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진정 국민을 섬기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년 대선을 누구나 희망을 품고 일어 설 수 있는 정책선거로 치러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ㆍ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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