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세월호 관련 KBS 보도개입 녹취록을 공개 하고 있다. KBS는 이날 이후 녹취록 관련 보도를 단 한번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기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전화를 종종 받게 된다. “팩트가 틀렸다”는 건 가장 흔한 항의이고, “그 사안은 이렇게 봐야 한다”고 가르치는 유형, “제목만 손 봐 달라”는 읍소형, “어린 것이 뭘 안다고 이런 기사를 쓰냐”는 호통형까지 매우 다양하다.

기사로 인해 명예훼손 등 불이익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아예 그 과정을 건너뛰어 바로 기자나 회사를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소송 주체가 정부나 권력기관일 경우, 기사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정당한 권리행사보다는 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 보도마저 찍어 누르려는 압박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나마 이 경우는 이미 나간 기사에 대한 항의를 통해 압박하는 것이다. 아예 사전에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또는 쓰지 말라 하면서 지시를 한다면. 게다가 그렇게 지시한 주체가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의 비서라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그런 일이 진짜로 벌어졌다. 물론 대략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현장이 생생한 육성으로 온 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습니까?” “지금은 뭉쳐가지고 정부가 이를 극복해 나가야지 공영방송까지 전부 이렇게 짓밟아가지고….”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아이~한번만 도와주시오.”

반말이 아닐 뿐, 이런 식으로 보도해라, 그런 식으로는 보도하지 말아라, 나이트 뉴스에는 내보내지 말아라 등등 일일이 지시하는 모습이 군사정부 시절 ‘보도지침’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는 항의를 보면 평소에도 수시로 청와대의 보도개입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일을 벌인 당사자가 바로 며칠 전에 이 같은 사실이 폭로됐는데도 여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출사표에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수장된 참사가 벌어졌는데도 국민과 희생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대통령 심기 경호만을 위해 공영방송에 보도개입을 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국민을 지키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겠다’니,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서번트(servant) 리더십’이라는 표현이다. 그는 “서번트 리더십으로 국민과 민생을 찾아가는 당을 만들기 위해 당의 구조를 뜯어고칠 것”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에겐 ‘마름 리더십’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오로지 대통령의 서번트로서, 국민에게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공영방송에 지침을 내리는 ‘마름’ 역할에 충실했으니 말이다. 그가 여당 대표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언론사가 전화를 받게 될까.

언론 자유가 이렇게 수십 년 전으로 후퇴를 했는데, 세계 미디어 동향을 발 빠르게 연구하고 디지털 혁신을 하자며 칼럼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보도를 하고 정부와 권력의 감시자가 아닌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기사만 쓰고 있다면, 그 기사를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로 내보내든 모바일 동영상으로 가공하든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말이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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