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키배’(‘키보드 배틀’의 준말)라고 부른다. 키배는 인터넷 문화의 일상이자, 성격이나 목적, 의의 등이 단어 하나에 욱여넣기 미안할 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무수한 키배들 사이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 단어는 바로 ‘난독증’이다. 자신의 말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난독이세요?” “난독증이세요?”하고 빈정거리는 것은 키배의 오랜 전통이다. (물론 구경하는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논리를 펴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이런 맥락에서 난독증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난독증은 질병이고, 잘못된 용례와는 증상도 다르다. 난독증은 듣고 말하는 데는 별다른 지장을 느끼지 못하는 소아, 혹은 성인이 단어를 읽거나 글자를 인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학습장애의 일종으로, 지능이나 환경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독증 때문에 배우생활 초기에 남들이 읽어주는 대본을 외웠다는 톰 크루즈의 일화가 유명하다. 우리나라 어린이 100명 중 5명에게서 발견될 만큼 흔하지만, 한글 습득이 늦겠거니 여겨져 진단도 치료도 더딘 편이라고. 의미부터 틀렸고 조롱과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난독증’은 이제 그만 내려놓자.

읽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는 ‘실질 문맹’이 적절한 표현이다. 말 그대로 실질적인 문맹이라는 뜻으로,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 문해 측정 영역은 산문 문해, 문서 문해, 수량 문해로 나뉘는데 여기서는 우선 논설이나 기사, 시, 소설 등의 텍스트 정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산문 문해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문맹률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 ‘실질 문맹률’에서 꼴찌다.

실질 문맹 검사는 약봉지에 쓰인 설명을 읽고, 투약 시기나 투약량 등을 맞추는 식이다. 이런 정보는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딱히 길거나 전문적이지도 않고, 비유나 상징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질 문맹들은, 모르는 단어 없이 다 읽고도 의미를 독해하는 데 실패하여 틀린다. 문해력은 글을 안 읽을수록 떨어지고, 시기를 놓치면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독서 경험이 빈곤했던 중장년층에서 실질 문맹이 가장 많고, 최근에는 십대 학생들의 비율도 높다고 한다.

잘 벼린 칼 같은 논리와 찰떡같은 비유로 읽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지는 글을 읽고 댓글을 봤다가 참담해진 적이 많다.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댓글들이, 겹치는 몇 개의 단어만을 알리바이처럼 쥐고 글쓴이를 꾸짖고 있었다. 뻔히 나와 있는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고 우기거나 논지 전개 과정을 전혀 따라가지 않은 채 일부분만 문제 삼기도 한다. 짧은 글이 주를 이루는 SNS에서조차 맥락을 이탈하는 첨언, 봉창 두드리는 답변이 넘쳐나니…. 오호통재라, “나랏말싸미 듕긕에 달아” 고통받는 백성을 생각할 때 세종대왕님이 중시한 것은 결국 이 ‘문해력’이었을 텐데.

높은 실질 문맹률의 원인으로 부실한 교육 과정,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과다한 학습 시간 등이 지목된다.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 ‘저녁이 없는 삶’이고, 읽고 쓰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만 열심히 읽는 것은 아니니, 구조적인 문제로만 접근할 수도 없다. 어떤 삶이든 시간이 충분한 사람은 없고, 안 읽는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도 안 읽으니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성실함이다. 자신이 읽은 것을 바탕으로 세계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특히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싶다면, 글을 정확히 파악하고 맥락을 짚어낼 만큼의 문해력 근육은 꾸준히 단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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