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겼다는 뜻이며 외모를 비하할 때 쓰인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을 뜻할 때 “걔는 얼굴이 빻았잖아”와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요즘은 의미가 확대되어 “눈 빻았냐?”도 쓰이고 있다. 이런 쓰임새는 경상도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경상도 지역에는 ‘부수다, 바수다, 빻다, 찧다’ 등의 의미가 있는 다양한 지역 변이어로 ‘빠수다, 빠사다, 뽀수다, 뽀사다, 뿌사다’ 등이 있다. 이런 변이어의 피동형은 ‘빠사지다, 빠아지다’ 등이다. 얼마 전부터 경상도 지역 일상 속어에서는 ‘빠사지다, 빠아지다’ 등의 단어가 얼굴 생김새의 묘사에 사용되었다.

물체나 물건을 깨뜨리거나 부수거나 빻거나 해서 작은 조각으로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이 사람의 얼굴 묘사에 비유적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런 용법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어서 ‘얼굴이 빻다’란 표현이 쓰이게 되었다.

지역 변이어의 비유적 사용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두 가지 경향이 생겼다. 하나는 지역 변이어를 표준어로, 그러니까 중립적으로 말한다면, 서울 지역의 사투리로 표기하려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음절 수가 많고 표기가 어려운 피동형을 피해서 능동형을 사용하려는 경향이다. 억지로 표준 문법을 고수한다면, ‘얼굴이 빻다’는 ‘얼굴이 빻아졌다’가 될 것이다.

한국어가 모어인 사람들에게도 어간이 ‘ㅎ’으로 끝나는 용언의 활용 표기는 제대로 빠르게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좋다’와 ‘파랗다’의 활용은 서로 다른데, 이것은 ‘좋아서’와 ‘파래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밀을 빻아서 밀가루를 만든다”든가 “깨를 빻으니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등과 같은 문장의 표기를 제대로 빠르게 처리하기란 힘들다.

표준어의 경우, ‘빻다’의 활용형은 ‘빻아, 빻으니, 빻는, 빻소’ 등이다. 그것들은 각기 [빠아], [빠으니], [빤ː는], [빠ː쏘] 등으로 발음된다. 그런데 인터넷 등에서 일상적으로 ‘빻다’가 활용된 형태의 표기에서 약간의 혼란이 있다. ‘빠앟다’가 바로 그것이다. ‘찧다’와 ‘빻다’의 과거형은 ‘빻았다’ ‘찧었다’이다. “얼굴이 빠앟다”는 표현은 “얼굴이 빻았다”를 잘못 표기한 것이다. ‘빠앟다’의 경우 과거를 나타내는 쌍시옷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착오로 어간의 ‘ㅎ’이 대신 옮겨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국어의 맞춤법이나 표기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법이니 표준말과 관련된 얘기는 접어두고, ‘빻다’의 비유적 용법에 관련된 사회적 차원의 얘기를 해보자. 우선, 사물의 분쇄 등에나 쓰이는 말을 사람 얼굴에 쓴다는 것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본디 사람의 언어가 비유적, 특히 은유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모든 언어는 원래 상징적, 비유적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일은 좋지 않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유치원 선생이나 하는 거지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는 사람이 종종 외모로 평가되고 있다. 굳이 비교한다면, 사람을 돈이나 권력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외모로 평가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외모에 의한 평가가 인종적, 성적인 차별 내지는 편견 등과 연결되는 경우다. 이런 사태는 거의 모든 문화적 이슈에 대해서 리버럴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나로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학삐리’로서의 나는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런 차별과 편견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나도 길거리에서 ‘얼굴이 빻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내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젊은 세대가 ‘빻다’라는 말을 얼굴 생김새의 표현에만 쓰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지 말라든가 외모에 의한 성차별과 인종차별은 지양해야 한다든가 라는 얘기를 젊은 세대에게 한다면, 젊은 세대, 특히 남자애들은 이렇게 훈계하는 나를 곧바로 꼰대로 취급할 것이다. 내놓고 말은 안 하겠지만, 그들은 분명히 속으로 “너 머가리(머리 +대가리) 빠앟냐?”고 반박해 버릴 게 틀림없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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