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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가 좌파정책? 할리우드에서 나온 것"

입력
2016.07.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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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야구 애호가답게 동반성장론의 특징을 야구에 비유해 설명했다.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야구 애호가답게 동반성장론의 특징을 야구에 비유해 설명했다.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룰만 공정하게 만들어 주자는 ‘공정성장’

정치적 구호에 그친 ‘경제민주화’와 달리

‘동반성장’은 경쟁 속에서 신사도 지키는 것

어느덧 흘러간 유행가처럼 생각했던 ‘동반성장’이 새삼스럽게 언론에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동반성장을 주창해 온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를 맡은 연구단체 ‘한국적 제3의 길’ 창립기념식 강연에서 자신의 동반성장론을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주장하는 ‘공정성장’과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경제민주화’와 비교하며 공정성장과 경제민주화 개념의 한계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념식에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부겸 더민주 의원 등 여야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기에, 정 전 총리의 발언은 내년 대선 구도와 맞물리며 세인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왜 경제민주화나 공정성장이 아니라 동반성장이어야 하느냐’고 묻기 위해 지난 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정 전 총리를 만났다.

_동반성장은 경제민주화나 공정성장과 어떻게 다른가.

“야구에 비유하자면 공정성장은 메이저리그 팀과 마이너리그 팀이 경기할 때 룰만 공정하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기술탈취, 납품가 후려치기, 장기어음 결제 같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없애거나, 벤처기업 육성하고, 실패한 기업인의 패자부활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 개선만 된다면 우리 경제의 모순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경제민주화는 메이저리그 팀과 마이너리그 팀이 경기할 때는 룰 공정한 것 정도로는 안 되고 양 팀 간 격차를 줄여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경제민주화 개념은 1987년 헌법에 반영된 이후 아직 어떤 이론적 정리도 없이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룰을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동반성장은 공정한 룰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고 격차도 줄여야 하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가 경쟁만 할 게 아니라 협력하고 상생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야구의 비유로 돌아가자면 경쟁이라는 본질은 유지하되, ‘5회가 끝나기 전에는 번트하지 않는다’든지, ‘5점 이상 이기고 있으면 도루 작전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등 신사정신을 지키는 게 동반성장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대기업은 돈이 많지만 투자할 곳이 없고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은 많은 반면 돈이 없는 현 경제 상황에서, 대기업에 집중되는 이익이 중소기업으로 합법적으로 그리고 스무드하게 흘러가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동반성장론이 제안하는 것 가운데 ‘초과이익공유’의 정신이다.

_도덕적으로 타당한 주장이지만 대기업에 이를 강제하기는 힘들다. 어떻게 대기업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할 때 내가 제안한 것은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를 조달할 때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 3가지다. 이중 뒤의 두 가지는 중소기업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고 지금도 시행 중이다. 반면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반감과 언론의 오해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해 안타깝다. 그 개념을 설명하자면, 대기업이 한 해 이익 목표를 10조원으로 정했는데 17조원의 이익을 달성했다고 했을 때 초과이익인 7조원에 대해 예를 들어 10%인 7,000억원을 중소기업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협력 중소기업이 그 돈으로 기술개발 고용안정 자금 등으로 쓰면 협력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그 기업의 부품과 기술력을 공급받은 대기업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세무조사를 면제해준다든지 또는 초과이익공유분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것 등이다. 초과이익공유제를 처음 제시하자 당시 한 의원은 나를 ‘급진좌파’라고 몰아붙였고, 어떤 그룹의 회장은 “사업도 하고 경제 공부도 했는데 초과이익공유는 자본주의 용어인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으며,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초과이익공유는 1920년대 자본주의의 총아인 할리우드에서 시작됐다. 스타와 계약할 때 영화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으니, 기본 출연료에다 영화가 히트하면 그 수익 중 일부를 더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일본에 납품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내 친구의 얘기인데, 가끔 이유 없이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일본 본사에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으니, 협력 기업에도 나눠준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독일 대기업에 특수용기 부품을 수출하는데,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요구하지도 않는데 독일 원청기업에서 인상분만큼 돈을 더 지불한다는 것이다. 세계 기업 생태계는 더는 예를 들어 토요타 대 현대차의 경쟁이 아니다. ‘토요타 + 협력기업’과 ‘현대차 + 협력기업’의 경쟁이다. 현대차가 협력기업과 초과이익을 공유하는 건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꼭 필요한 조치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버니 샌더스 후보도 모두 이익 공유제 도입을 공약했다.”

_대기업이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 국내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원인으로, 한국의 과도한 규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상황에서 동반성장론은 새로운 규제의 등장에 그쳐 기업의 투자의욕을 낮추고 오히려 경제회복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근본 이유는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핵심 첨단기술이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기술을 지닌 해외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려 하더라도 그 기술을 운영할 국내 인력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한국은 주로 ‘모방형 인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는 상황이라면 이런 인력 개발이 효율적이지만, 이제는 보다 많은 창의적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한국 대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세계 5위 수준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을 찾는 ‘연구’는 등한시하고 선진기술을 응용하는 ‘개발’에 만 돈을 투입한다. 중소기업은 그나마도 투자할 돈이 없다. 우리나라 10대그룹 기업이 보유한 돈은 45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30대그룹 기업은 590조원이다. 이게 얼마나 많은 돈인가. 2,000여년 전에 태어난 예수나 2,500여년 전에 태어난 부처가 지금까지 살아 계시다 치면 그분들이 태어난 날부터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0만원씩 써왔다고 해도 1조원을 쓰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큰돈의 몇백 배 되는 돈이 대기업에 쌓여 만 있으니 그 돈이 부족한 곳, 즉,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 기업의 투자도 경제회복도 가능하다. 동반성장이 그걸 실현할 수 있다.”

국내 10대 그룹이 보유한 돈만 450조원

중소기업 흘러들게 해야 투자-경기회복 가능

심상정의 ‘최고임금 제한법안’에도 찬성

[저작권 한국일보]1일 오후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1일 오후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양극화 해결 방안 중 하나라 최저임금 인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최고임금 제한법안’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소득주도 성장론도 그런 움직임과 궤를 같이했다. 지금까지 학계 평가는 외국에서 이런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과감하게 정규직으로 바꾸도록 유도한다든지, 최저임금을 올려준다든지, 중소기업 종사자 월급을 대기업의 75%로 올려준다든지, 이런 걸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했을지 모른다. 최저임금을 올려주면 편의점 같은 영세자영업자들만 힘들어진다는 우려가 크지만, 최저임금은 성장 촉진정책 이전에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의 비용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선 공적 영역부터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사기업에 자극을 줘야 하고, 어려움을 겪는 영세기업에는 보조금 정책을 써서 해결해야 한다. 심상정 위원이 최고임금 제한법안도 찬성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영진이나 전문직 종사자는 임금이 끝없이 올라가고, 중산층 이하의 실질임금은 수십 년간 제자리다. 이런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다. 그래서 샌더스 열풍이 나오고 조금 맥락이 다르지만 트럼프 현상이 나오는 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영국의 보통사람들이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_다시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정 전 총리의 참여를 요청하는 세력도 적지 않을 듯하다.

“난 지금까지 정당에 가입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맡을 때도 참여 요청이 여러 번 거듭돼 더 거절하면 결례일 것 같아 고민 끝에 수락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당신도 나도 서민 출신이니, 서민을 위해 함께 일합시다’라고 권유해 거절할 수 없었다. 물론 욕심도 있었다. 하나는 양극화 완화였고, 또 하나는 지금 생각하면 순진한 생각인데, 총리가 돼서 김정일을 만나 개성공단을 활성화하고 다른 곳, 예를 들면 해주, 신의주, 원산 등에 공단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 남북 간 교류를 끌어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_그렇다면 동반성장을 실현하는 데에는 현재 어떤 정당의 정책이 가장 가까운가.

“찾기 힘들다. 내가 동반성장당을 하나 만들까. (웃음)”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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