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과 의자. 평생 내가 가장 가깝게 몸으로 만나는 물건들이다. 의자에 엉덩이를 부리고 책상에 팔꿈치를 올린 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때로는 잠을 잔다. 김기택 시인은 그의 시 ‘사무원’에서 ‘의자 고행’이라는 적절한 표현을 썼는데, 현대 도시의 많은 직장인들은 매일 의자 고행 중이다.

김용삼의 동시 ‘청소 시간이 되면’은 항시 “엉덩이를 받쳐” 무거운 몸무게를 감당하던 의자가 잠시 자기의 역할에서 해방되는 장면을 포착한다. 바닥을 단단하게 딛고 사람의 몸무게를 견디던 의자가 네 다리를 하늘로 올리고 텅 빈 몸으로 물구나무를 서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나는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속이 후련해진다. 사람의 의자 고행을 감당하던 의자 고행이 멈추어진 시간이다.

김수영 시인은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고 했다.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겠다는 조병화의 ‘의자’, 꽃도 열매도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이정록의 ‘의자’도 있다. 더 멋진 의자는 가수 장재남이 부른 ‘빈 의자’가 아닐지.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이 ‘빈 의자’님을 얼른 찾아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모셔야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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