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고향’ 미국 뉴올리언스. 그곳에 도착한 첫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설렘 때문이 아니었다. 호텔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이었다. 음악과 취객의 고성방가, 사이렌 소리가 섞여 있었다. 재즈가 공기처럼 흐른다는 버번스트리트였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만 난무했다. 재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나 실망이 환호로 바뀌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호텔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프릿츨(Fritzel's)이라는 재즈 바로 향했다. 마술처럼 빨려 들어간 공간은 방금 걸어온 거리와 180도 달랐다. 재즈가 살아서 구석구석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관객들은 손에 칵테일을 들고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굴렀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 신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잊고 재즈에 흠뻑 빠져들었다. 1831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과 벽에 걸린 낡은 그림은 분위기를 더해줬다.

“미국은 관심 없는데, 죽기 전에 뉴올리언스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말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뉴올리언스에서는 매일이 재즈 페스티벌이었다. 개성 넘치는 수십 개의 클럽에서 재즈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맥주 한 병값이면 밤새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연주자들 코앞에서. 뉴올리언스에서 머물던 9일간 가장 잘한 일은 매일 저녁 빠지지 않고 재즈클럽을 찾은 것이었다.

음악도 좋았지만, 뮤지션들과 이야기를 직접 나눌 수 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 프렌치맨 스트리트의 클럽들을 기웃거리던 날이었다. 스팟티드 캣(Spotted cat)이라는 바 앞에 서 있던 아저씨가 손짓했다. 2분 후면 공연을 시작하니 보러 오라고 했다. 뉴올리언스 맥주인 아비타를 한 병 주문하고 피아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표 파는 분인 줄 알았던 아저씨가 갑자기 피아노 의자에 앉더니 피아노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블랙홀이었다. 음악의 바다에 피아노 건반들이 파도를 쳤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졌다. 연주가 끝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은 브랏 램시.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지금도 너무 즐겁단다. 좋아하는 것도 일로 하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난 재미로 해. 재미가 가장 중요하지.”라고 말했다. 재미로 일하다니, 이렇게 부러울 수가.

브랏과 함께 인상에 남는 연주자는 리처드 스콧이다. 걸쭉한 음색에 신들린 피아노 실력을 갖춘 그는 45도쯤 기울어진 방향으로 앉아있었다. 연주가 끝나면 얼른 관객 쪽으로 몸을 돌려, 함박웃음를 보내기 위해서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연주를 듣는 내내 아이돌 그룹을 보러 온 여고생이 된 것 같았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관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면, 스콧은 피아노에서 90도로 몸을 틀어 환호를 온몸으로 쑥쑥 빨아들였다. 얼굴 가득 찬 그 미소는 미스유니버스도 따라가지 못할 백만 불짜리였다. 박수가 커질수록 스콧의 에너지 충전기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충전 후 그의 연주는 더 반짝였다. 솔로로 연주할 때는 화려하게, 베이스나 드럼, 트럼펫과 함께 연주할 때는 동료들과 눈길을 교환하며 높이를 맞췄다. 감동적인 실력을 갖추고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 혼자 할 때와 함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 스콧을 보니 프로는 이래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했던 프리저베이션 홀(Preservation Hall). 그곳에서 본 더블베이스 연주가도 잊을 수가 없다. 새까만 얼굴에 흰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그는 더블베이스를 마치 자신의 일부분인 것처럼 연주했다. 더블베이스에 나오는 풍부한 소리에 깜짝 놀라고, 아이를 다루듯 어르고 달래는 몸짓에 감동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더블베이스를 안고 음 하나하나에 애정을 듬뿍 주는가 싶더니, 긴 현의 양 끝을 오가며 더블베이스를 우쿨렐레 다루듯 연주했다. 일흔은 족히 되어 보였지만, 그에게 나이는 아무 문제 되지 않았다. 연주를 듣는 내내 황홀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자신의 일을 즐기며 멋지게 해내는 뮤지션들. 재즈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뉴올리언스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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