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 시립 서북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세월호 의인’ 고 김관홍 잠수사 발인식에서 박주민(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고인의 운구를 차량으로 싣고 있다. 뉴시스

“제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곁에서 도와달라고 했지만 싫다고 했습니다. 이제까지는 제 당선을 위해 뛰었지만 앞으로는 제가 제대로 일 하는지 눈에 불을 키고 지켜 보겠다고 했죠. 그러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가버렸습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은평갑)은 19일 고(故) 김관홍 잠수사 발인식을 마친 후 고인을 떠올리며 기자에게 총선 직후 두 사람 간 대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김 잠수사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박 의원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김 잠수사는 박 의원의 후보 시절 운전 기사와 수행 비서 역할을 맡았습니다.

박주민 의원실 최일곤 보좌관은 “(박 의원이) 당에서 가장 늦게(3월 20일) 그것도 연고도 없는 곳에 공천을 받고 은평갑에 갔을 때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라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후보를 돕겠다고 했고 특히 김 잠수사는 가장 힘든 일을 하게 해달라 했고 운전을 하겠다고 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가장 늦은 시간까지 후보를 챙기고 나서야 퇴근을 했던 그는 가장 이른 시간에 어김없이 후보를 태우고 선거 운동을 다녔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은평에 살았던 김 잠수사였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김 잠수사는 박 후보에게 단순한 운전 기사가 아니었습니다. 박 의원은 “허리가 왜 이리 굽었나. 명함 줄 때 이렇게 멈칫 거리느냐.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내라 등 도통 가만 두질 않았습니다”며 “어찌나 시어머니 노릇을 하던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죠”라고 회고했습니다. 박 의원도 그런 잔소리를 하는 김 잠수사에게 잔소리로 답했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고 박 의원의 후보 시절 캠프 사람들은 ‘톰과 제리’ 같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김 잠수사가 잔소리만 하던 건 아니었습니다. 박 의원은 “사실 둘이 동갑내기(1973년생)입니다. 그러나 서로 잠수사님. 변호사님 하면서 둘이서 참 많은 얘기를 나눴죠. 특히 자신을 포함해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제가 꼭 (국회의원에) 당선 되어야 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생존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을 위해 희생했던 분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죠”라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 작업을 하느라 허리와 목 등에 부상을 입은 김 잠수사는 잠수를 하지 못한 채 대리운전 기사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김 잠수사가 운전을 하게 된 다른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박 의원은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쉽게 잠 들지 못하기 때문에 늦은 시각까지 몸을 힘들게 하고 나서야 겨우 잠을 좀 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라며 “가장 힘든 일을 하며 후보를 돕겠다고 한 것이나 대리운전을 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김 잠수사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자발적 도움에 힘입어 박 의원은 당선이 됐죠. 그리고 김 잠수사는 더 이상 박 의원을 위해 운전대를 잡지 않았습니다. 최 보좌관은 “당선되자마자 이제 저보고 운전대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본인이 박 의원 옆에 있으면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하면서요.” 박 의원은 김 잠수사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자신이라도 국회의원 잘 하고 있는지 감시를 해야 하니 옆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대신 박 의원은 김 잠수사와 함께 법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은 지원을 받는 대상을 ‘승선자 및 그들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과 형제 자매’로 한정하고 있어서 그 동안 ▦민간 잠수사 ▦소방공무원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학생 및 교직원 ▦구조 및 수색ㆍ수습 활동에 참가한 자원봉사자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뭉친 것입니다. 박 의원은 “민간 잠수사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지원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자비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 치료 등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생계를 유지하며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다 치료 기관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꾸준히 병원을 찾지 못하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공유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도 17일. 바로 김 잠수사가 숨진 채 경기 고양시 한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 된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당일 김 잠수사가 빈소가 마련된 서울시립서북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 의원은 기자에게 “함께 고민해 왔던 그 법안을 만든 그 날 김 잠수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는다”며 “어제(16일) 지역구인 은평에서 열린 세월호 행사에서 잠깐 얼굴을 보고 같이 식사를 하려 했는데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해서 결국 함께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의원은 법안 발의 기자회견도 김 잠수사와 함께 하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박주민(오른쪽에서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와 희생자 수습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과 함께 세월호참사 피해지원특별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운명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기자회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김 잠수사는 법안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신 박 의원은 김 잠수사의 유지(遺志)를 담은 뜻을 담아 ‘김관홍 잠수사법’ 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박 의원은 “(김 잠수사가) 자신도 힘든 상태지만 지난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증언을 했던 이유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라며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한 연장 등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먼저 세상을 떠난 그를 위한 제가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물론 고인도 생전에 자신의 말처럼 제가 잘 하고 있는 지 끊임 없이 지켜보고 싫은 소리를 해대겠지만요”라고 말했습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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