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JTBC ‘비정상회담’에서 외국인 패널들이 한국 문화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느끼는 한국 문화의 이상한 점, 적응하기에 힘든 점, 이해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여러 지적이 나왔다. 서열위주 사회구조와 문화나 일상 생활 속에서 남을 배려하는 매너 부족 같은 지적은 어찌 보면 동양권과 서양권 문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비정상회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기욤 패트리. jtbc 제공.

그런데 캐나다인 기욤 패트리가 말한 명절 이야기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은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 대부분 나라에서 명절이란 기쁘고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인데, 유독 한국에서는 피곤하고 전혀 축제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동감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고향이나 가족을 제일 그리워하는 때가 바로 명절이다. 러시아에서 성대하고 의미 있게 지내는 명절날인데 한국에서는 별로 크지 않거나 명절로 인식하지 않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새해를 맞이하는 12월 31일이 러시아에서는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데 한국에서는 새해 첫 밤을 축제로 맞이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처음에 많이 놀랐다. 3월 8일 여성의 날도 그렇고 2차 세계대전 전승의 날인 5월 9일도 그렇다. 문화도 역사도 다르니까 명절도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한국의 큰 명절 때의 분위기는 러시아 새해맞이와 비슷할 것이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현실이 내 예상과 달랐다.

겉으로 봤을 때 설날이나 추석 때 축제도 많고 이벤트나 행사가 많다. 서울 경복궁이나 대형 박물관에 가면 여러 가지 한국 전통 행사가 벌어진다. 윷놀이니 한복 입기니 외국인 관광객은 이 이벤트를 즐거워하며 사진 찍기 바쁘다. 뉴스에서도 도시공원 풍경, 온갖 행사장 콘서트, 송편 만드는 비법 등등에 대한 뉴스가 이어진다. 한국에 사는 첫해, 이를 보며 ‘한국 명절도 역시 성대하게 지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들의 속마음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결혼한 한국 여성 친구 중에는 설날이나 추석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기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내 주변에서도 추석 연휴가 다가올수록 명절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많이 늘어난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을 버텨야 하는 이야기, 도착하면 쉬지도 못하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여자들,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 평소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명절 때나 만나는 친척들과 어색하게 말을 나눠야 한다는 불평들이 주요 내용이다. 내 친구 중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해 서울에 사는 러시아 여성이 있다. 그 친구도 해마다 설날과 추석을 악몽처럼 무서워한다. 그리 길지도 않은 회사 휴가를 써서 남편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야 하는 것을, 그 친구는 농담처럼 ‘한국인과 결혼한 대가’라고 말한다.

한국 문화에서 제일 큰 명절을 한국사람들은 왜 그렇게 괴로워할까.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러시아의 새해맞이 등은 바쁜 일상을 벗어나 편하게 쉬면서 가족끼리 모여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기쁜 날들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쉬다’라는 단어에 있는 것 아닐까. 한국인 친구 초대로 설날과 추석 때 몇 번 그 친구 집에 갔는데 전혀 온 가족이 모여서 쉬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물론 러시아도 새해맞이 때 여자들은 음식 준비하고, 집 정리를 하느라 쉬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불행을 느낄 정도로 고된 것도 아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일만 하고 쉴 줄 모른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국제기구 공식 통계를 봐도 그렇고 한국에서 살아보면 더욱더 그런 사회 분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OECD 국가 중 근무 시간이 제일 긴 것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이제 휴식을 즐기는 방법을 배웠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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