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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기본소득, 미래의 역사

입력
2016.06.1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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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화제다. 지난주 스위스에선 기본소득 규정을 담을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77%의 압도적인 반대였다. 그 주요 이유는 재정 조달의 의문과 쇄도할 이민자의 우려에 있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이 지구적 차원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높은 관심의 배경을 이룬 것은 ‘알파고 현상’이다. 알파고 현상을 통해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진전이 노동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생생히 실감했다. 앞으로 일자리 감소는 가속도로 진행되고, 그 결과 실업이 일상화된 상태가 될 터인데, 그런 가까운 미래에서 경제적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갈지 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이란 노동ㆍ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이 제도의 목적은 국가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근대 이후 토머스 페인, 존 스튜어트 밀 등 여러 사상가에 의해 빈곤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제시됐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세기에 제임스 토빈, 존 갤브레이스 등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물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보수적 경제학자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보장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1969년 닉슨 정부는 기본소득 제도를 반영한 ‘가족 지원 계획’을 추진했고, 1980년부터 알래스카 주에선 석유 자원의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기본소득을 실시해오고 있다.

우리 지식사회에 기본소득이란 말을 알린 이는 생태론자 앙드레 고르였다. 그에 따르면,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사회적 총생산량이 증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어 왔다. 전세계 30% 정도의 노동력은 과잉 상태이며, 이를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론 감당하기 어렵다. 이에 고르는 노동시간 단축, 자유시간 증대, 그리고 기본소득 보장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했다.

기본소득은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다. 복지 사각 지대를 없애고, 복지 관리 비용을 줄이며, 선별 복지에 따르는 낙인 효과를 방지하는 것을 포함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용한 해법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본소득 제도는 일하려는 의욕을 줄이고, 재원 확보를 위해선 불가피하게 세금을 올려야 한다.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의 경우 기본소득이 낮게 책정된다면 평균 복지급여 수준이 하락할 수도 있다.

디지털 기술이 열고 있는 ‘제2의 기계 시대’를 전망한 정보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기본소득의 명암을 주목한 바 있다. 이들은 기본소득이 경제적 궁핍을 해결해 줄 순 있지만, 사회적 권태와 방탕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에게 일 또는 직장이란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지겹다는 게 하나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을 선사한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이 일차적 대안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의 핵심은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중장기적 결과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계가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시대다. 고르가 강조했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현재의 부(富)’가 비약적으로 증가함에도 국민 다수가 ‘미래의 곤궁’에 놓인다면, 기본소득과 같은 심플하면서도 래디컬한 대안을 결국 도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핀란드,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추진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선 녹색당, ‘녹색평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이 기본소득 제도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 왔다.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올 일자리 감소와 불평등 증대를 복지제도의 강화로만 해결하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기본소득이 예정된 가까운 미래의 역사이지는 않을까. 지켜볼 일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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