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시애틀)가 11일 텍사스와 홈경기에서 2회에 솔로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 무대를 차례로 정복하고 나란히 태평양을 건넌 서른 넷 동갑내기 이대호(시애틀)와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아메리칸 드림’이 무르익고 있다.

둘 모두 팀과 지역의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신인왕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11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와 홈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으로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을 만든 이대호는 12일 현재 10.3타수당 홈런 1개씩을 치는 괴력으로 ‘타석 대비 홈런 수(타수/홈런)’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시즌 9호와 10호 홈런을 연거푸 터트린 이대호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로는 최희섭(37), 추신수(34ㆍ텍사스), 강정호(29ㆍ피츠버그), 박병호(30ㆍ미네소타)에 이어 5번째로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아울러 한ㆍ미ㆍ일 3개국에서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스캇 서비스(49)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상대 선발 유형에 따라 선발 라인업을 바꾸는 전략) 속에서도 이대호는 104타수를 소화한 가운데 10홈런을 쳤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타석 대비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는 아담 듀발(28ㆍ신시내티)이다. 듀발은 197타수에서 17홈런을 기록했다. 11.6타수당 홈런 1개를 치는 속도다. 이대호가 듀발만큼 경기 출전 기회를 잡았다면, 산술적으로 19홈런을 칠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20개)인 마크 트럼보(30ㆍ볼티보어)와 홈런왕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짜릿한 상상이 가능하다.

이대호는 12일까지 42경기를 소화했는데 시애틀 구단 사상 신인 자격을 갖춘 선수 중 개인 첫 42경기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린 선수는 1984년 앨빈 데이비스와 1997년 호세 크루스로 11개를 쳤다. 이대호가 10개로 3위다. 첫 42경기에서 두 차례 이상 멀티홈런을 기록한 것도 이대호가 세 번째다. 시애틀 신인 최다홈런은 1984년 데이비스의 27개인데 현재 이대호의 페이스는 무려 40홈런에 육박한다. 더 이상 기량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대호가 신인왕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플래툰 시스템의 족쇄가 풀리는 길뿐이다. 이대호는 연타석 홈런을 친 뒤인 12일에도 아담 린드(33)에게 자리를 내 주고 벤치를 지키다 1-1로 맞선 연장 10회말 린드 대신 대타로 나가 우전안타를 쳤다. 시즌 타율은 3할8리로 올랐다. 시애틀은 1-2로 패했다. 서비스 감독은 이날 경기 전 “한국인들은 나로 인해 불행할 것”이라며 이대호의 기용 방식에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11일 피츠버그와 원정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 피츠버그=AFP 연합뉴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사상 첫 ‘불펜 신인왕’에 도전한다. 오승환은 11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PNC 파크에서 치른 피츠버그전에 3-2로 앞선 8회말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9경기 연속 무실점과 시즌 11번째 홀드를 챙겼다. 평균자책점은 1.60으로 끌어내렸다. 12일 현재 30이닝 이상 던진 내셔널리그 불펜 투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이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지난달 이미 오승환을 신인왕 후보 중 한 명으로 골랐다. 감독 추천으로 출전하는 투수 부문 올스타전 출전도 유력하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강정호와의 사상 첫 KBO리그 출신 한국인 투ㆍ타 맞대결이었다. 2사 3루에서 강정호와 만난 오승환은 2구 시속 151㎞ 빠른 공으로 파울을 만들어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었다. 강정호는 3구 시속 151㎞ 바깥쪽 직구를 파울로 걷어내며 버텼다. 오승환은 다시 시속 138㎞ 슬라이더를 던졌고, 강정호를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한국 선수끼리 첫 대결을 승리로 끝냈다. 세인트루이스가 5-1로 승리한 12일엔 오승환이 등판하지 않았다. 강정호는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대호와 오승환은 올 시즌 빅리그에 진출한 선수들 중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게 점쳐졌다. 오승환은 시속 100마일(약 160㎞)을 던지는 투수가 수두룩한 미국에서 150㎞의 ‘평범한’ 직구로는 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했고, 이대호는 수비와 주루 능력에 물음표가 붙었다. 우리 나이로 서른 다섯의 ‘고령’이라는 점도 박병호나 김현수에 비해 평가절하 됐다. 오승환은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입지가 좁아진 상태였고, 이대호는 스프링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미국 땅 한 귀퉁이만 밟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잃을 게 없다’는 심적인 편안함, 그리고 경험과 관록이 반전의 원동력으로 풀이된다. 동료들과 스킨십에서도 여유가 넘친다. 서비스 감독은 이대호의 연타석 홈런으로 7-5 승리를 거둔 11일 밤 “이대호가 2~3주에 한 번 한국에서 온 물품을 선수단에 선물한다. 오늘은 건강 목걸이를 선물했다”고 공개했다. 이대호는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되는 목걸이”라며 “타격에도 도움이 된다. 모든 선수에게 목걸이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오승환은 반대로 팀 동료인 맷 카펜터(31)로부터 작은 불상을 선물 받았다. 오승환의 별명인‘돌부처(Stone Buddha)’에서 착안해 카펜터는 최근 원정경기를 위해 찾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작은 불상을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오승환은 자신의 라커룸에 불상을 놓고, 기회가 될 때마다 쓰다듬으며 “내 새로운 행운의 부적”이라며 불상을 애지중지한다.

한편 박병호는 12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타깃 필드에서 열린 보스턴과 홈경기에서 6번 1루수로 출전해 3타수 무안타 삼진 2개로 경기를 마쳤다. 최근 6연타석 삼진이다. 폴 몰리터(60) 미네소타 감독은 4-5로 뒤진 7회 2사 1루에서 박병호 타석 때 좌타자 오스왈도 아르시아를 내보냈다. 미네소타는 4-15로 대패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포츠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