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춘풍예찬(12): 시론적 대담

8일 오전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원로 연극 연출가 오태석씨(왼쪽)와 박근형씨가 대학로에서 연극 포스터들과 함께 서 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국립에서만 두 번했지만 (또 하는 건)요새 너무 막 나가고 하니까 큰 제사 한번 지내보자는 심정이죠. 너무 재미 없잖어, 세상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마련한 ‘원로 연극제’에서 12일까지 목화레퍼토리컴퍼니의 ‘태’를 초빙 받은 오태석 선생이 공연의 의의를 밝혔다.

듣고 들어도 새로운 미학 강론이 두르륵 꿰어져 나온다.(그에게는 자신의 지론을 새 이야기처럼 풀어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내 무대는)우리 옷을 입은 볼거리, 숨쉬기의 마당이죠. 군자대로라며 인간의 품위를 지키려고 하신 옛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사셨는지. 인간의 기품은 어쨌든지 지키려고 하시지 않았나. 좁다란 논두렁에서 아는 어른 오면 젊은이들은 아예 바닥으로 내려가 ‘진지 잡수셨어요’ 했잖아. 사람답게 되는, 사람다운 짓을 하는....

옛날에는 공중 전화 박스 안에서도 자기 얘기를 조심했는데 요새는 바로 옆에 (사람이)있든 없든 해버려(핸드폰 이야기다). 그럼 사람이 아니지. 그런 것들을 되돌리려는 노력도 없는 요즘 세상에서, 살면서 망가진 도리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그게 ‘태’다.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 눈물이 있었는지....그게 너다. 남도 그만큼 소중하다. 판을 벌려준 것인데 그런 연유로 ‘태’를 택한 거다. 자기를 스스로 업신여기는 시대에. 지금은 자기를 거지발싸개만큼 생각하는 것 같애“ 후손들이 만들어 놓은 살벌한 세상을 절망하는 심청의 이야기를 갖가지 볼거리와 함께 풀어놓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는 그래도 낭만은 있었다.

-오태석 : ‘태’는 국립에서만 두 번했지만 (또 하는 건)요새 사람들이 너무 막 나가고 하니까 큰 제사 한번 지내보자는 심정. 너무 재미 없잖어, 세상이. 우리 옷을 입은 볼거리. 숨쉬기가. 군자대로라며 인간의 품위를 지키려고 하신 옛 우리 어른들은 어떻게 사셨는지. 인간의 기품은 어쨌든지 지키려고 하지 않았나. 좁다란 논두렁에서 아는 어른 오면 젊은이들은 아예 바닥으로 내려가 지지 잡수셨어요 했잖아. 사람답게 되는, 사람다운 짓을 하는…. 옛날에는 공중 전화 박스 안에서도 자기 얘기를 조심했는데 요새는 (핸드폰으로)바로 옆에 (사람이)있든 없든 (제 얘기를)해 버려. 그럼 사람이 아니지. 그런 것들을 되돌리려는 노력도 없고, 살면서 망가진 도리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그게 ‘태’다. 한 아이가 태어나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 눈물이 있었는지.

그게 너다. 남도 그만큼 소중하다. 원로 연극제라고 판 벌여준 것인데 그런 연유로 ‘태’를 택한 것. 자기를 스스로 업신여기는 이 시대,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너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거지발싸개만큼 생각하는 것 같애.

오 선생에게는 ‘오태석 공연 대본 전집’이 15권 67작품으로 정리되어 있다. 배우들이 하는 재공연 본까지 감안하면 다 합쳐 대충 100편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선생의 추측이다. “50년 (연극)했으니 1년에 두 편꼴. 많이 했지….”

박근형 씨는 “자작 희곡 20여편, 번역극 등 모두 50편 채 안 된다”고 했다. 최근작 ‘죽이 되든 밥이 되든’은 막장까지 달려간 유랑 가족을 그린다. “뒤틀린 역사성, 전쟁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 역사의 부채와 현실 정치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죠.” 흔히들 말하는 박근형표 연극이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좌고우면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연극을, 스스로 질문 하며 하는 사람한테 붙여준 말이겠죠.”

“연극 인생 20년 되나?” (오 선생이 박근형씨에게 넌지시 묻는다. 그리고 후배의 연극에 대해 한마디 하는데) “20년 동안 초지일관 해 오니 삶의 분모에 해당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헤쳐서 긁어낸다고 할까? 근친 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를 추적하다 시대까지 그것을 확대해서 우주와 만나기까지의 일관성은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박근형씨한테서는 그런 느낌이 들어와. 다양한 색이 모여진 가족, 가정이라는 그런 세계의 어처구니라 할까. 세계를 돌리는 힘은 뭔지, 아주 끈끈하게 계속 물어왔다. 그게, 큰 세계가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이루지 못 한 꿈일지도….”

덧붙이는데, “나는 11살 때 부친이 납북되시고. 가부장이란 것이 단어로만 있어. (그 문제에 관해서는)결핍이 많다고 생각하지. 아버지 부재 상황은 엄청나. 애비 없는 후레 자식이란 말….”

인터뷰 자리에는 두 사람과, 오 선생의 중절모가 함께 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박근형씨, 같은 문제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아버지 부재가 아니다. 돌아가시고 난 뒤 내가 철부지였다는 걸 알게 됐으니. 누나로부터 들은 아버지의 모습은 참 외롭게 사신 분이구나 하는 것. 나와는 별로 대화도 없고, 그래서 그 분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일제 시대에 만주, 포로 수용소 다녀 오신 것도 뒤늦게 알게 됐다.

내 작품 속의 아버지는 부재하신다기보다 문제적 인물이다. 그러나 아이를 갖게 되고 나니 (자식에게 비쳐질)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내가 이해 못 했던 아버지까지 . 일 안 하고 술 좋아하고 가끔씩은 집에도 안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 볼거리, 들을거리

오: “구질구질하게 살던 옛날 사람들도 5일장 나올 때는 깨끗하게 치장하고 나갔고, 그게 어린이 눈에도 아름다웠던 거라.(곧 궁상맞은 생활에 대한 반명제로서의 볼거리를 의미한다)”

박 : “나는 무대에서 궁상 많이 떤다. 무대는 물론 배우의 움직임이 칙칙한 것이 내 연극이다.”

오 : “(그 말을 받아)박근형은 현상태를 헤집는 것이다. 지금 세대의 어려움은 근형이 (나보다)잘 안다. 가난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내 마음의 가난이 제일 문제다. 지고지순한 스승이 요즘에는 미천한 존재로 된 것은 집에서 그렇게 가르친 때문이다. 역사 도덕 한문도 안 가르치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이)그런 것을 못 먹었다. 그러니 얼마나 가난하냐!

핸드폰을 손에서 못 놓는 아이들한테 본보기가 돼 주는 어른들이 있는가? 아무 것도 섭취되는 게 없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불쌍하지. 핸드폰이 없으면, 아이들은 숨 쉴 수 있다. 아이들이 너무 안 됐다. 어떻게 국사 과목이 선택이냐?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고 있던 대가족의 테두리가 무너지고 핵가족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핸드폰과 과외뿐이다.”

● 지원 문제

오 : “나의 좋은 작품은 지원(금)이 없을 때 나왔다. 나의 경험으로 돈이 오니,(작품은) 눈물 없는 빵이었다. 창작은 어차피 중노동이다. 예술은 가난하다. 진자 좋은 공연 올리면 관객은 온다. (작품으로)정면 대결하라. 어차피 지원금으로 제작은 제대로 못 한다.”

박 : “원론적으로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극장 상주 단체 문제 같은 것이 일단 한번 수립되면 정권과 관계없이 쭉 갔으면 한다. 큭특 대관의 공정성 문제는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오 : “목화 30주년 기념 공연 때 4개 극장에 공연장 신청했는데 한 군데도 안 됐다. 제작도 아니고 대관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나 같은)어른도 취급 못 받는데 연극 하는 후배들이야 오즉하겠나”

두 사람의 인연은 연극 현장의 바깥에서 시작되었다. 대산문학상 심사 위원으로 있던 오 선생에게 여러 해 계속 최종 심사까지 올라오는 박근형이란 후배가 자연 각인된 것이다. 이 연극인들의 인연은 그러니 무대 바깥에서 이미 싹텄다는 편이 옳다.(어느 자리에서 박근형을 후계라 한 이유에서 기자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 내력도 선생이 구상중인 작품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전가의 보도인 생략과 비약의 일부라는…)

작품의 출발점으로 세태의 변화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는 오 선생, 요즘 심기가 영 편찮다. “(요새는)신문이고 뭐고 하나도 안 봐. (정치인들을)용서해 줄 수가 없어. 이제 더는 못 참겠어. 특히 작년 중반부터 정치권 노는 거 보니 너무 실망스러워….”.

최근 선생은 신작 ‘도토리’를 탈고했다. 오는 10월 초 대학로대극장에서 1주일 동안 초연 무대를 갖는다. “요즘 어느 산이고 산행들 많이 하는데, 오르내리며 너나 없이 도토리 주워 배낭에 넣는다. 그 많던 다람쥐, 청설모 사라진 게 그 때문이다. 먹을 것도 아닌데 왜 갖고 오나들….”

장병욱 선임기자

“연극은 어차피 중노동, 가난 한 것”이라고 오 선생은 말했다.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혜화역 2번 출구 계단 벽에 붙어 있는 '태(胎)'의 포스터. 신재훈 인턴기자 (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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