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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NOW] 클린턴보다 '올드'한 미디어

입력
2016.06.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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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미국 일리노이주 라살에서 한 아티스트가 호박에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를 그려 넣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8일 미국 일리노이주 라살에서 한 아티스트가 호박에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를 그려 넣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치열했던 미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가 이제 마무리 국면에 접어 들었다. ‘악동’ 도널드 트럼프는 사실상 공화당 후보로 일찌감치 결정됐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공식 지지까지 받은 힐러리 클린턴도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분위기다.

항상 상대방을 조롱조로 공격하는 트럼프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예상대로 오바마의 클린턴 지지를 비꼬는 트윗을 날리자 클린턴은 놀랍게도 “계삭하시지(delete your account)”라는 인터넷 용어를 사용해 펀치를 날렸다. (‘계삭’은 ‘계정 삭제’의 줄임말)

이는 진짜로 계정을 삭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이 인터넷에서 심각한 실언을 했을 때 조롱하는 표현에 가깝다. 올해 2월 젭 부시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 사진과 “미국(America)”이란 단어를 통해 총기 소지가 미국을 상징한다는 듯한 트윗을 올리자, 미 국가안보국(NSA) 도청을 폭로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계삭하라”고 쏘아붙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총기 소지가 미국을 상징한다는 듯한 젭 부시의 트윗에 일격을 날린 에드워드 스노든. 트위터 캡쳐
총기 소지가 미국을 상징한다는 듯한 젭 부시의 트윗에 일격을 날린 에드워드 스노든. 트위터 캡쳐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날린 트윗은 곧바로 확산됐다. 그 동안 ‘재미라곤 없는 일 중독자 할머니’ 이미지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터넷 트렌드 용어로 트럼프를 쏘아 붙이는 모습은 클린턴에 가장 적대적인 층인 젊은이들의 환호마저 불러일으켰다.

그 와중에 참으로 답답한 트윗이 하나 보였으니, 미국 ABC방송 정치뉴스 계정(@ABCPolitics)의 트윗이었다. 이 계정은 매우 진지하게, “클린턴 캠페인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트위터 계정을 삭제하라고 말했다”라고 썼다.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인터넷 용어라는 것을 모르냐”며 어이없어 했고, 미국 IT미디어 더 버지(the verge)는 “나이 든 언론사가 혼란에 빠졌다”며 슬쩍 비웃기까지 했다.

10일 미국 ABC 방송 트위터 계정이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 계정의 조롱 글에 대해 인터넷 농담으로 답한 것을 진지하게 전하고 있다. ABC 트위터 캡쳐
10일 미국 ABC 방송 트위터 계정이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 계정의 조롱 글에 대해 인터넷 농담으로 답한 것을 진지하게 전하고 있다. ABC 트위터 캡쳐

언론사가 인터넷 용어에 무지한 것이 큰 흠은 아니지만, ABC 계정의 코멘트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올드미디어 구성원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 같아 씁쓸하다.

지난달 20~27일 런던에서 열린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총회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참가했다. 여기서 1895년 설립된 스웨덴 신문사 미트미디어(MittMedia)는 어떻게 9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들였는지에 대한 사례를 발표했다.

이 회사는 새로운 세대가 뉴스와 광고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이해하고자 18~23세의 인턴 사원들과 8개월 동안 집중 연구를 수행했다. 이 세대에 해당하는 40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 소비 행태에 대한 조사를 실행했고, 사내에서 가장 젊은 직원들, 미디어 관련학과 대학생들과 함께 혁신연구소를 만들어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실험했다.

조사 결과 이 세대는 오로지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짧고 이해하기 쉽게 요약된 뉴스, 특히 영상에 대한 요구가 컸고, 자신과 관련이 있는 뉴스는 적극 확산시켰다. 광고에 대해서는 배너 광고나 영상이 시작하기 전에 강제로 재생되는 광고에 대해서는 매우 불만이었으나, 재미있거나 유익한 내용의 네이티브 광고에 대해서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트미디어는 주된 연령이 40대 이상인 편집자나 기자들만으로는 이들 세대가 진짜로 원하는 콘텐츠를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경비를 줄여 젊은 직원들을 고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역시 젊은 세대에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광고주를 위한 네이티브 영상 광고를 제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신문 케이프 아거스는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그들에게 하루치 종합 1~5면의 편집권을 내준 파격적인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견해를 담은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고 신문 편집도 했으며, 결과물도 큰 호평을 받았다.

스웨덴과 남아공은 지구상에서 극과 극에 위치해 있지만, 모두 스스로를 낮추고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연구하는 자세를 보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의 전통 미디어도 젊은 세대를 포용하려 한다. 소셜미디어용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을 인턴으로 고용한 언론사도 많다. 아예 이들만으로 운영되는 서브 브랜드가 성공한 곳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언론사의 주요 뉴스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전통적인 기사가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아직까지도 젊은 뉴스 소비자와 생산자들을 중요한 주체가 아니라 주변부나 객체로 여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부터 반성해 본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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