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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없고 칼퇴근… 알바에게도 공공기관은 ‘신의 직장’

입력
2016.06.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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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적어도… 돈보다 여유”

공공기관 경험 이력서에 큰 도움

‘갑질’ 사장ㆍ손님 없는 점도 매력

알바생 25명 뽑는데 250명 지원

경쟁 치열하자 선발 자격 제한도

“열악한 알바생 현실이 문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 급증하며

알바생들의 월급은 되레 떨어져

서면 근로계약서도 32%만 받아

“청년수당 등 기본소득 보장해야”

곧 여름 방학이다. 더위가 공부를 놓게 한다. 부지런히 여행이나 다니면 될까. 하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흙수저’ 대학생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연간 1,000만원에 이르는 학비가 걱정이고 높은 취업 문턱도 근심거리다. 이제 아르바이트(임시직ㆍ알바)는 아픈 청춘이 감내해야 하는 보편 필수 노동이 돼 버렸다.

그러나 알바 학생한테는 노동자 대접도 해주지 않는 게 우리 사회다. ‘용돈 벌러 나온 철부지들은 잘 구슬리거나 윽박지르기만 하면 싸게 부려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장님들이 생각한다.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알바비도 떼이는 경우가 잦고, 돈을 보고 일하자니 몸이 축나는 알바 자리만 나온다. 당연히 일도 편하고 돈도 안정적으로 챙길 수 있는 알바 자리에 대학생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편하고 스펙 관리 가능한 공공기관 ‘꿀알바’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자사가 운영하는 알바 포털 알바몬과 함께 지난달 31일부터 사흘간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의 69.0%는 여름 방학에 알바를 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과반수(52.2%)가 뽑은 최고의 ‘꿀알바’는 사무보조였다.

사무보조 중에서도 갑(甲)으로 꼽히는 건 공공기관 알바다. 편하기도 하고 돈도 떼일 염려도 없고 게다가 스펙과 공부할 여유까지 챙길 수 있어서다. 금상첨화인 셈이다. 공공기관은 상용직 노동자뿐 아니라 알바생에게도 신의 직장이 됐다.

공공기관 알바의 장점은 무엇보다 기본이 지켜진다는 점이다. 우선 임금을 떼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염려가 없다. 지난해 9~12월 서울의 한 구청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 경험이 있다는 문모(26ㆍ여)씨는 8일 “2012년 카페에서 알바로 일했는데 당시 사장이 자기 치아 임플란트에 쓸 돈이 필요하다며 한달 월급 80만원을 주지 않으려 해 신고하겠다고 말한 뒤에야 겨우 받아낸 적이 있다”며 “다른 곳에서는 비일비재한 이런 임금체불을 우려할 필요가 없는 데다 주휴수당(약속한 한 주 노동시간을 채우면 사용자가 지급하는 하루치 급여)이나 식대까지 꼬박꼬박 잘 챙겨주는 게 공공기관 알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갑질’할 사장이나 손님이 없다는 점도 다행이다. 문씨는 “다른 데서 일하면 일단 알바가 고용주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지자체에는 그런 모멸적인 상황이 없다”며 “공무원들이 직접 알바생에게 월급을 주는 게 아니니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고, 직원보다 대민 업무가 적어 감정노동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겨울 방학 기간인 올해 1월 서울의 한 구청 복지시설에서 일했던 서울 소재 대학 4학년생 신모(23ㆍ여)씨는 알바 기간 돈도 벌고 유학 준비까지 했던 경우다. 신씨는 “공공기관을 고른 이유는 돈보다 여유”라며 “졸업하고 독일에 음악을 배우러 갈 생각인데 비는 시간엔 공부해도 된다고 직원이 알려줘 한 달간 독일어 학습까지 했다”고 전했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일 경험도 무시 못할 인센티브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강도 높은 일을 시키는 게 아니니 일하면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근무 기간 동안 쌓는 행정 경험이 이력서 쓸 때 좋은 ‘스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실제 알바한 친구들이 취업할 때 증빙서류를 떼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알바몬 관계자는 “‘칼퇴근’이 가능하고 직무 경력을 쌓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알바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준수와 근로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알바당 캠페인. 알바몬 광고화면
최저임금 준수와 근로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알바당 캠페인. 알바몬 광고화면

열악한 알바노동 현실이 근본 문제

이렇게 조건이 비현실적이다 보니 치열한 경쟁은 당연하다. 서울 종로구청이 다음 달 1일부터 한 달 정도 구청과 동주민센터에서 하루 5시간씩 주 5일 업무 보조와 현장체험 활동을 할 알바생 25명을 뽑겠다고 공모하자 지원자가 250명에 육박했다. 임금은 박해 점심값(5,000원)을 얹은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을 주는 정도였는데도 경쟁률이 10대1에 달한 것이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공공기관 알바 구인 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관내 지역주민으로 선발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 구리시청 도서관 알바 자리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든 서울 소재 대학 3학년생 한모(22ㆍ여)씨는 “지금 사는 경기 구리시에서 고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떨어진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시급이 많지 않은데도 알바생이 공공기관에 쏠리는 현상은 열악한 한국 알바노동 현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과 언론 매체 프레시안이 함께 연 알바 노동자 수기 공모전 우수상 당선작을 보면, 한국의 알바생들이 처한 상황이 생생히 드러나 있다. 한 백화점에서 프랜차이즈 분식업체 점포 알바를 했던 A씨는 이 수기에서 출근 첫날 남녀 막론하고 아무나 드나드는 창고에서 여성인 자신이 수치심을 감내해가며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에 경악했다고 토로했다. 알바생이라는 이유로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8시간 동안 딱 한 번 주어지는 5분 휴식 시간에 자비로 산 빵을 황급히 입에 밀어 넣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가 받은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500원 많았지만, 노동 조건의 대가치곤 터무니없이 적다고 그는 한탄한다.

특히 2014년 무렵부터 폭증한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는 청년 알바생의 노동 조건을 뒷걸음질치게 만든 주범 중 하나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 정현상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까지 104만원이던 음식점 청년 종사자의 월급이 2014년 93만원으로 되레 떨어진 건 저임금 알바생이 커피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에 대거 흡수돼서다.

근로기준법도 무시되기 일쑤다. 2014년 7~9월 대구 소재 13개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해본 청년 알바생 203명을 대상으로 김용원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가 벌인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알바생의 32.7%만 서면 작성된 근로계약서를 받았다고 답했다. 충분한 휴게시간을 보장받은 경우도 36.3%에 불과했다.

정부가 대다수 대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유럽 나라들의 경우 알바(유럽에서는 파트타이머라 부른다)는 경험 축적을 통한 취업 디딤돌 역할을 주로 한다. 게다가 임금은 많고 고용주의 횡포는 드물다. 독일 유학생 장모(22)씨는 “식당 서빙으로도 시급 7.5유로(약 1만원)를 받을 수 있을 정도”라며 “고용주ㆍ알바생 간 상하관계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법 사각지대를 촘촘히 메우면서 청년 구직자들에게 청년수당 같은 기본소득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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