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1982년 재일교포간첩 사건 피해자 최양준(왼쪽. 77세)씨와 1979년 삼척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순자(오른쪽. 72세)씨. 가운데는 국가폭력피해자를 위한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 간사 강혜지(가운데. 26세)씨.

얼마 전 누군가 내게 이런 얘기를 던졌다.

“힘든 일만 골라서 하시는 것 같아요. 몸 잘 돌봐 가시면서 하시길 바랍니다.”

몇 해 전부터 내 개인의 소소한 일상과 더불어 나름 몸과 마음을 들여 하는 일들을 한 SNS에 틈틈이 올리고 있는데, 최근 시작한 조작 간첩 고문피해자분들과의 사진 치유 프로그램에 대한 심정을 담은 내 글에 대해 한 지인이 보낸 안부 글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글이 연이어 댓글로 달렸다.

“가지 않는 길로만 가시는 모습 힘드실 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다시 그 어려운 작업을 하시는군요. 응원할게요.”

모두 응원과 격려를 담은 덕담이지만 그 얘기들을 듣고 오히려 머리가 멍했다.

언젠가부터 이와 비슷한 얘기를 이따금 들은 기억이 있다. 아마 직장을 그만두고 국내외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과 가까이하며 지내온 뒤로 종종 그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된 듯하다. 온전히 들뜬 기분으로 받아들이거나 겸손의 댓글로 화답하면서 내 일에 충실하면 될 일이지만, 어인 일인지 어정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들썩거린다. 칭찬은 고맙지만 과연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자리에 있는 것일까. 과연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만 매달리며 마치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나 다름없이 ‘고매’한 삶을 살아온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 누구나와 같을 뿐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일부러 하지는 않는다. 언론사 사진기자로 시작해 사진가의 범주 안에서 살아가는 지금까지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늘 몸을 움직여 왔다.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기자초년병으로서 자원해 현장을 지킨 후 운명처럼 마음이 흐르는 자리를 찾아 그 안에 몸을 들이는 것으로 내 할 일을 찾았다.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는 기자로서의 사명보다는 그 역사의 거센 격랑 속에 허덕이는 ‘삶’에 더 시선이 머무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미련 없이 기자를 그만두었고, 그렇게 타인의 삶에 조금은 깊이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대단한 무언가를 하려 함이 아니라 더 작고 가벼운 형식의 일들이었고, 다만 시간과 공을 더 들일 수 있어 그에 따른 성취감이 더욱 나 자신을 기쁘게 했을 뿐이었다. 어지러운 세상을 더 낫게 바꾸고 싶다는 젊은 시절의 호기를 버리고 기대치의 중심을 누군가의 삶 옆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삼으니 훨씬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물론 유희적인 재미보다는 의미로서의 자기 행위에 대한 만족감이고, 그것에 한결 ‘편안’해지는 이유도 함께 있다.

결국 세상의 과찬 속에 춤출 일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매달리는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 다만 현실의 무게 안에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이 더 이상 당사자의 자기파괴나 자책감의 기제가 되지 않도록, 오히려 그들의 삶에 성장과 회복을 위한 발판으로 전이의 감정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여덟 분의 조작 간첩 고문피해자들과의 만남이 몇 주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듣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삶 전체가 망가지고 자존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그분들은 자신의 과거를 모두 지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찌 그리될 수 있겠는가. 단 한 번뿐인 자기 인생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든 이 땅의 암울한 현대사 또한 지울 수 없는 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할 일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일부를 거창하게 거론하는 일이기보다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행위’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고 스스로 자기 회복을 이루어가도록 돕는 일이 나의 일인 것이다. 그 변화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은 이유다.

세월호 참사 등 아픈 이들을 위한 치유의 영역에 훨씬 큰 걸음을 딛고 있는, 존경하는 한 인생 선배가 최근 내게 ‘치유자’라는 육중한 무게 하나를 얹어주었다. 창작의 영역으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사진 행위를 활용한 치유자로서의 나의 삶을 이제 감히 그렇게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분한 호칭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오늘만큼은 내 삶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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