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전 국민에게 매달 300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이 5일 국민투표에서 77%의 반대로 부결됐다. 직업, 수입과 상관없이 무조건 기본소득을 제공해 스위스를 지상 최고의 ‘복지 천국’으로 만들 제도로 기대를 모아왔지만 증세와 기타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이로써 비슷한 실험을 추진하는 유럽 각국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모든 성인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300만원)을 지급하는 스위스의 기본소득안은 투표 전 여론조사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일부 조사에서는 반대 여론이 70%를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를 주도한 스위스 민간단체나 지식인모임 등은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들은 부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재원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스위스 의회도 투표에 앞서 제도를 “유토피아적 안”이라고 비판하며 기본소득 도입 시 매해 최소 250억스위스프랑(약29조9,200억원)의 예산 부족분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정부와 의회가 발표한 가장 보수적인 수치임에도 현재 스위스 연방정부 연간 지출(670억스위스프랑)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다. 물론 추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현재 40%에 달하는 스위스의 소득세도 일정 부분 상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문제는 뼈아픈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해도 기존의 사회ㆍ경제적 약자에게는 오히려 생활 수준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 금액이 충분히 높게 책정되지 않는 한 연금생활자 등 기존 복지 대상자들이 받던 혜택을 대체하지 못한 채 복지 반대 여론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뱀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기 위해 개구리를 더 살찌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스위스 노동조합 분야의 좌장 격인 배니아 알레바 역시 “기본소득제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스위스는 이미 원활히 작동 중인 사회보장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투표를 호소하는 포스터 앞을 지나 시내버스에 오르는 스위스 시민들. 연합뉴스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이 국가 간 장벽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특히 난민 수용에 관한 논쟁이 격화한 유럽에서는 난민 또는 이주민을 국민으로 받아들여 증세를 감수하며 기본소득의 혜택을 공유할 것인지가 민감한 사항이다. 이에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스위스 국민이 기본소득을 받아들일 경우 아예 국경을 닫거나, 이주민들을 기본소득 혜택에서 배제된 ‘2등 시민’으로 전락시킬 방안을 찾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인 나라도 적지 않다. 핀란드의 경우 내년부터 무작위로 선정한 성인 1만명에게 2년간 매달 550유로(72만7,000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나 만틸라 핀란드 사회보건부 장관은 이같은 계획을 발표하면서 “핀란드의 사회보장 체계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에서도 위트레흐트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유사한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할 방안으로 배당금 연계 기본소득제를 제안하고 있다. 배당금 연계 소득 제도를 시행하는 대표 도시인 알래스카는 관영 석유기금에서 거둔 수입에 따라 주민들에게 배당금 차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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