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천일야화] 11. 이슬람과 기독교, 강남스타일이 공존하는 터키

터키 에페소스 히드리아누스신전 정문 위에 메두사 부조가 새겨져 있다.

터키 3대 도시인 이즈미르에서 버스로 50분 달려 에페소스 유적에 도착한 것은 2012년 11월20일이다. 어릴 적 성당 다닐 때 성경 속 에베소라는 지명이 귀에 박힌 터라 가슴이 먼저 뛰기 시작했다. 마침 궂은 비가 내리던 에페소스는 성모 마리아와 요한이 살았고 사도 바울이 55년부터 3년 간 전교한 곳이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에페소스가 터키에 있다는 사실에는 태무심했다.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도인 터키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순례 성지인 것은 아이러니였다.

에페소스 유적 남쪽 입구에서 삼성 로고가 찍힌 우리글 안내간판을 먼저 만났다. 해외에서 보는 한글은 언제나 엔도르핀을 분출시킨다. ‘에베소의 역사’가 약도와 함께 적혀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일뿐인데 단체사진에 독사진, 셀카사진 등 사진에 빠진 무리들이 여럿 있었다.

폭 10m 안팎의 대리석 길로 한 발 한 발 고대 기독교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목 날아간 인물상과 돌기둥 사이로 부채꼴 모양의 소극장 오데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2,000년 전 시낭송회나 웅변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2세기 로마황제 히드리아누스에게 바쳐진 신전 위에는 메두사 부조가 살아 뛰쳐나올 것 같다.

발 형태의 문양 하나가 시선을 잡았다. 왼발이었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사창가란다. 머리 속에 각인된 에페소스는 성지인데 느닷없이 사창가와 마주하니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 곳도 사람 살던 도시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사창가 문양에 발이 찍은 것에 대해서는 억측이 난무하지만 정설은 이렇다. ‘발 크기가 이것보다 작은 녀석들은 출입금지.’

고대 3대 도서관인 켈수스도서관을 지나 2만 명을 동시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있는 피온의 언덕으로 올라오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민 10%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극장을 지었다고 하니 당시 에페소스 인구는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에페소스 성모마리아 교회의 벽면에 십자가 문양이 선명하다. 431년 이곳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마리아가 신의 어머니 반열에 올랐다.

들판 한 가운데 성모마리아교회에는 석조기둥과 십자가가 그려진 벽돌담뿐이었다. 그냥 지나칠 뻔했다. 431년 이곳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 반열에 올랐다.

에페소스를 떠나 동쪽으로 달린다. ‘목화의 성’으로 불리는 파묵칼레의 야경은 환상적이었다. 푸르스름한 우윳빛의 파묵칼레에 야간조명이 더해진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곳에는 석회층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석회붕 1㎜가 자라는데 백만 년이 걸린다니 파묵칼레의 역사는 인간의 셈법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다시 찾은 파묵칼레는 온천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수백 개의 온천탕 같았다. 어떻게 보면 계단식 논처럼 생겼다. 바지를 걷고 석회붕을 밟다 두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

파묵칼레의 석회붕은 1㎜ 자라는데 100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곳 언덕에는 히에라폴리스로 불리는 로마 도시의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대욕장과 신전, 체육관, 성 필립보기념당 등이다. 한쪽 끝까지 무작정 걸었다. 음산한 모양의 석조물이 즐비했다. 1,000기가 넘는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였다. 무덤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의 무덤이 큰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무덤이 크다고 하늘나라가 가까울 턱이 없건만, 살아있는 자의 허영심까지 보태지면서 일단 크고 화려하게 짓고 본다.

한참 걷다보니 주변에 인기척이 없다. 나는 공동묘지 한 가운데 서 있다. 머리칼이 곤두섰다. 꽁지가 빠지게 관광객 무리 쪽으로 뛰어가는 나는 거창하게 삶과 죽음을 음미하던 5분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우주의 이름모를 행성을 떠올리게 하는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

버스는 또 동쪽으로 달린다. 카파도키아는 지구 위의 도시가 아니었다. 버섯 모양의 봉우리가 하늘로 솟아있고, 도로 옆 암벽마다 동굴이 숭숭 뚫려있는 곳은 머나먼 행성이었다.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가 이곳 카파도키아였다.

안타깝게도 카파도키아에는 안개가 도시를 덮고 있었다. 잠시 안개가 걷힌 틈 속으로 펼쳐진 괴레메 계곡의 전경은 이랬다. 원추형 봉우리 사이로 스머프 둥지 같은 집들이 박혀있고, 암벽에는 사람도 살 수 있는 동굴이 나 있었다. 동굴아파트로 불러도 좋을만한 돌산도 여럿 있었다.

이곳 괴레메 계곡에는 4세기부터 신앙을 지키려는 기독교인들이 동굴교회를 365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과교회, 뱀교회, 버클교회 등 이름도 독특한 교회 16개만 남아있었다.

안개 때문에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이곳은 열기구 천국이었다. 어디선가 열기구가 수백 개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을 봤다면 그곳은 바로 카파도키아다. 귀국 후에도 열기구를 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던 터에 뉴스 한 꼭지를 접하게 됐다. 2013년 5월20일 카파도키아 상공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탄 열기구와 외국인들이 탄 열기구가 충돌해 외국인 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사했지만 평생 가슴 떨리는 기억과 영웅담으로 미화된 추억 사이를 왔다갔다할 것이다.

기독교 박해의 상징인 지하도시 데린쿠유로 내려가려면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밟아야 한다.

이제는 땅 속이다. 깊이 86m, 지하 7층 규모의 지하도시 데린쿠유는 박해를 피해 살던 기독교도들의 가슴 아픈 유적이다. 5,000명이 한꺼번에 살았던 이곳은 좁은 입구에 나선형 계단을 따라 개미굴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식당과 교회, 학교, 외양간, 저장고 등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적의 침입을 차단하는 바위 회전문도 있었고, 지상과 연결되는 통풍구도 있었다. 현지 가이드가 조약돌 하나를 통풍구 위쪽에서 떨어뜨려본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리가 났다.

카파도키아에는 이런 지하도시가 30개나 된다고 했다. 종교가 위대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성지순례를 계속하던 터라 터키가 밸리댄스의 나라라는 사실을 한참 잊고 있었다. 이날 저녁 찾은 밸리댄스 공연장, 하르만달리도 동굴 형태였다. 동굴 입구에서 10m 걸어가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원형무대를 중심으로 길다란 객석이 부채살처럼 펼쳐져 있었다.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각지의 관람객이 떠들썩했다.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 신도들이 카파도키아 하르만달리에서 명상춤인 수마를 추고 있다.

이곳에서 밸리댄스보다 더 사람을 빨아들이는 춤을 발견했다. 세 남자가 흰 옷에 흰 원통형 모자를 쓰고 몽상적인 음악에 맞춰 제 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팔을 옆으로, 위로 벌려 돌고 또 돌았다. 지극히 단순한 춤인데도 관람객들은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의 명상춤, 세마였다. 체험을 통해 신을 찾으려는 믿음, 그 통로 중 하나가 세마였다. 12세기 세마의 창시자 젤랄레딘 루미는 단순히 빙글빙글 도는 것만으로 신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세마는 10분 남짓 진행됐지만, 실제로는 1시간 이상 돈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어지럽다.

밸리댄스 무희들의 허리는 드럼통이었다. 밸리댄스는 허리살이 있는 여인의 춤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다이어트 춤으로 소개되고 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무희들이 관람객의 손을 이끈다. 객석과 무대가 하나되는 춤판이 펼쳐졌다. 기차놀이도 했다가 디스코도 추면서 흥이 무르익는다. 클라이막스때 터져나온 음악은 강남스타일. 독일의 중년 남성도, 일본의 30대 여성도, 세계인이 모두 함께 말춤으로 하나 된 밤이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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