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절상은 ‘잃어버린 20년’의 단초
獨 다른 EU국의 동반절상에 충격 완화
금리인하로 위기에 선제적 대응해야

일본의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달러화에 대한 평가절상을 내용으로 한 1985년 플라자합의의 파급효과는 컸다. 시각 및 분석방법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으나, 그로부터 약 5년 뒤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단초가 됐다고 보는 데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엔화의 지속적 평가절상은 한국경제에 저유가, 저물가 및 저환율이라는 ‘3저 호재’를 가져와 지속적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한국경제에 의미 있는 무역흑자를 안기기도 했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마르크화의 평가절상 쇼크를 흡수해 줄 장치가 있었다. 독일 수출의 50% 정도를 차지하던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 통화의 동반절상을 부르는 유럽통화체제(EMS)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EMS도 92년에는 위기에 빠졌고, 여기에는 ‘독일통일’이라는 또 다른 충격 때문이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침체에 빠진 유럽 주요국 경제는 통화정책의 수요 측면에서는 금리인하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90년 10월 독일통일 완성 이후 92년 7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6%이던 재할인율을 8.75%까지 인상하는 금리인상에 나섰다. 시야를 80년대 말까지 확장하면, 88년 12월의 3.5%에서 3년 반 동안에 무려 5.25%포인트에 달하는 금리인상이었다. 이는 경기침체로 금리인하가 필요했는데도 EMS의 환율조정장치에 묶여 금리인상을 강요 받은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에 큰 부담이 됐고, 급기야 영국, 스페인 등 여러 나라의 EMS 탈퇴를 불렀다. 그 이후 상하 2.25%라는 매우 좁은 범위에서만 허용되던 EMS 회원국의 환율변동은 상하 15%까지로 고쳐졌다. EMS의 위기상황에 다름 아니다.

두 사건을 오늘의 세계경제 변동과 통화정책 운용에 비추어 보자. 지난해 말부터 미국과 다른 한편의 유로존 및 일본의 통화정책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일찍 경제체력을 회복한 미국은 물가를 고려하여 금리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달리 유로존과 일본은 양적 완화 정책을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중국의 경우 국제화가 덜 진전된 위안화의 환율에는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있다. 이미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해 거의 4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쌓아 놓은 중국은 이를 활용해 세계를 누비면서 고급기술과 시장력을 보유한 굴지의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러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에 비해 한국의 통화정책은 어딘지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로 불리는 한국이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느냐 여부의 논쟁이 있고, 최근 미국이 중국과 함께 한국을 ‘환율조작 관찰국’으로 지정해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국의 경제회복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도 마다하지 않는 일본의 정책방향이나, 재정위기의 늪에 빠진 유로존 회원국들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금융 불가’라고 규정한 정관을 파기하면서까지 자금공급을 지속하며 지속적 양적 완화에 나선 유럽중앙은행의 보다 적극적 정책 행보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물론 한국 통화정책의 방향 설정은 한국경제가 내수경제로 구조적 전환을 할지, 수출 주도 경제구조를 그대로 이어갈 것인지와도 중요한 관련이 있다. 다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일본의 산업경쟁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한국 주요산업의 존립기반이 수출확대에 있을진대,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경쟁국이라 할 일본, 독일 등 제조업 중심국의 통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자국의 경제위기 때는 지속적으로 양적 완화를 실시하고 경제가 회복되니 금리인상을 하려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지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플라자합의는 1-2년의 통화정책 변화가 실물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 옴을 확인시켰다. 물가안정이 통화정책의 유일한 정책목일 수도 없다. EU, 일본의 예에서 보듯, 위기상황일수록 선제적ㆍ능동적 통화정책이 요구된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한독경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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