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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박근혜 생각’ 있기나 하나

입력
2016.05.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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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히 깨진 청와대 회동 협치 기대

상시청문회법안 꼼수로 거부권 행사

여소야대 속 국정수행 구상 안 보여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 지도부 회동에서 여야 지도부와 대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 지도부 회동에서 여야 지도부와 대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은 임기 1년 반 동안 여소야대 정국구도를 어떻게 헤쳐나갈 생각일까. 그런 생각이 있기나 한 건가. 요즘 박 대통령 하는 걸 보며 드는 상념이다.

지난 13일 청와대 여야3당 원내지도부 회동 직후만 해도 기대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참석자들 면모를 일일이 거론하며 친근감을 나타내 대화정치, 협력정치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싸늘한 레이저 시선 대신 생글생글 웃으며 유머스럽게 분위기를 이끈 것을 두고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달라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냉소와 독설로 정평이 난 유시민 전 장관도 한 방송 프로에서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에 빗대 ‘누나 개그’라고 호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날 청와대 회동의 6개 합의사항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건‘임을 위한 행진곡’관련이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이 곡의 기념곡 지정 및 제창 여부가 뜨거운 논란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회동에서 더민주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기념곡 지정을 강력히 요청했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공감을 표시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기념곡 지정이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회동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비춰 당연히 이 약속은 박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야당은 환영을 표시했다. 국민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국민통합과 협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사흘 후 청와대는 또 다른 국론분열을 이유로 5ㆍ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현행대로 합창하기로 했다는 보훈처의 결정을 야당에 통보했다. 야당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흘 전 박 대통령의 생글생글한 웃음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고 제창할 경우 이번에는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셀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보훈처가 주장한 대로 또 다른 국론분열이다.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박 대통령은‘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방안’이란 표현으로 곤란한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했다. 단순한 꼼수를 넘어 야당을 기만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교묘한 언어구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난을 사지 않으려면 청와대 회동 자리에서 야당의 요청에 적극 반박하든지, 아니면 보훈처에 강력히 지시해 기념곡 지정을 관철했어야 한다.

보수진영의 전반적 정서를 박 대통령 자신도 어쩌지 못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통합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다. 현행대로 합창을 하더라도 대통령인 나는 제창을 하겠다든지, 행사에 참석한 총리와 정무수석에게는 제창하라고 지시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뿐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포함 여타 우리사회 난제를 풀어가는 데 박 대통령은 깊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상시 청문회 국회법 개정법률안 거부권 행사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행정부 감시와 견제는 국회의 권한이자 고유기능이다. 미국처럼 상시 청문회를 통해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일하는 국회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새누리 전신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2005년에는 이번보다 더 강력한 청문회법안을 내기도 했다. 당시 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행정부 마비법’이라며 전혀 다른 입장에 서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더욱이 19대 국회 임기종료로 국회본회의 소집이 불가능한 시점에 국회 재의를 요구했다. 신ㆍ구 국회 임기 이행기 허점을 노린 고약한 꼼수다. 거부권행사 유효여부 법리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그 이전에 국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법을 능멸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야당들이 합의하면 언제든지 청문회가 가능한 상황에서 거부권행사의 실익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원칙 문제라고 하지만 정치력, 지혜의 유무 문제가 더 본질인 것 같다.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은 국정을 무엇으로 이끌어 가려는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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