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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저울] “돈 때문에 옷 벗는다”는 판검사들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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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저울] “돈 때문에 옷 벗는다”는 판검사들의 뒷모습

입력
2016.05.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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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지난해부터 검사생활을 그만둘지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검사 월급으로는 자녀교육 제대로 시키기에도 빠듯하다는 게 그가 내세운 이유입니다. “남들은 검사니까 막연히 먹고 살 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혼자 벌어서는 사교육비조차 감당이 안 됩니다. 아들이 올해 특목고에 합격하면 사표를 내야 할 것 같아요.” 최근 만난 부장판사도 웃지 못할 이야기를 전합니다. “법원행정처에서는 판사생활 10년 하고도 전세를 살거나 애가 셋이라고 말하면 ‘곧 돈 벌러 나갈 요주의 인물’로 보고 중요보직에 발령을 안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판사들은 돈 많은 고위 법관들의 재산공개내역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하, 저 분은 집안이 넉넉하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법관생활을 할 수 있었구나.”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불거진 ‘정운호 게이트’로 전관 변호사들의 고액 수임료가 도마에 오르자 현직 판검사들의 급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판검사들은 공직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할 때 주로 경제적인 이유를 듭니다. 도대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길래 사법시험 합격하고 어렵게 다져놓은 판검사라는 타이틀까지 포기할까요?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최유정 변호사는 부장판사 출신이고 수사단계에서 ‘몰래 변론’ 혐의를 받고 있는 홍만표 변호사는 검사장 출신입니다. 이들이 한 해에 벌어들인 돈은 50억~1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판검사들의 급여는 법률과 규칙에 따라 정해지고 공개됩니다. 지난해 개정된 ‘법관 보수에 관한 법률’ 및 ‘법관 및 법원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판사의 기본 보수(월급)는 1년차 276만원, 10년차 418만원, 20년차 573만원입니다. 검사는 4월 개정된 ‘검사의 보수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1년차 285만원, 10년차 433만원, 20년차 578만원 수준의 기본 보수를 받습니다. 여기에 각종 수당과 직급보조비 등을 모두 합하면 실제 받는 급여는 더 많습니다.

판검사 보수표. 14호봉까지는 1년 9개월 단위로 오른다.
판검사 보수표. 14호봉까지는 1년 9개월 단위로 오른다.

가장 최근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기택 대법관과 김수남 검찰총장의 심사보고서를 살펴보면 20년차 판사는 연봉이 7,428만원, 25년차 검사장은 1억1,428만원, 28년차 고검장의 경우엔 1억2,230만원입니다. 대법관은 대략 1억2,0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됩니다. 판검사들은 20년간 뼈 빠지게 일해야 겨우 대형로펌 신참 변호사의 연봉과 비슷해진다고 하소연하지만, 다른 공무원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습니다.

대형로펌의 한 대표변호사는 “한참 잘 나가던 판검사가 40대에 공직을 접고 변호사로 개업하면 십중팔구는 경제적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나간다고 보는 게 맞다. 공직자 급여가 아닌 전관 변호사의 높은 수입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경제적 눈높이가 일반 국민보다는 훨씬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원과 검찰 조직 내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사직 이유로 내세우는 ‘경제적 이유’가 평범한 소시민의 시선으로는 곱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니, 울화통이 터질 일일 수도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던 초임 시절의 사명감은 온데간데 없고 결국 ‘제2의 최유정’ ‘제2의 홍만표’가 되기 위해 판검사 경력을 쌓았을 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개업소식을 전할 때 화려한 ‘현직 인맥’을 자랑하는 것만 봐도 돈벌이에 매몰된 씁쓸한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때 국가의 사법질서를 바로 세우던 그들이 어느새 변호사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전관을 선임해야 승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면 이보다 더 모순된 일이 있을까요.

2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신임 검사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
2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신임 검사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

판검사들은 막대한 권한이 부여된 만큼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더 큰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요구됩니다. 다른 행정부처 공무원과 달리 판검사를 특정직공무원으로 임용하는 데에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라는 요구가 깔려있습니다. 그들의 결정 하나에 대기업 총수가 수감되고 국회의원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판사를 가리켜 ‘하늘이 준 도끼를 등에 지고 일한다’고 하고, ‘검사의 칼에는 눈이 없다’며 신중한 공권력의 행사를 강조합니다. ‘스스로 더 엄격한 검사가 되어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한다’던 신임검사의 선서. ‘법관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정한 법관윤리강령. 경제적 이유를 들어 법복을 벗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과거 다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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