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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눈 잘 자

입력
2016.05.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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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를 해 보면, 불러주는 것을 듣고 그대로 쓰는 건데도 쉽지가 않다. 잘 듣고 똑바로 쓴다고 썼지만 틀리게 쓰기 일쑤다. 그런데 박성우 시인은 받아쓰기를 참 잘한다. 아이의 말을 어쩌면 이렇게 잘 받아 적었을까. 어린아이와 아빠의 대화를 그대로 받아 적었기에, 시를 읽으면 마치 귀여운 아이의 천진한 목소리가 쟁쟁 들려오는 듯하다.

아기를 재울 때 왜 ‘코 잘 자’라고 할까?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거기에 한번도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다. 굳이 풀이하자면 ‘코오’ 하고 고요히 숨 쉬며 편안히 자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아이의 코를 살며시 짚으며 ‘코 잘 자!’ 하기도 하니까, ‘코’는 의성어나 의태어이기도 하고 숨 쉬는 코를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아이가 그 코가 그 코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엉뚱한 것도 아니다. 사실 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 단계는 눈을 감는 것이니 ‘눈 잘 자’ 하는 것이 훨씬 더 잠과 어울린다. 코가 자 버리면 큰일이라는 공포도 아이답고 일리 있다. 어떤 엄마들은 아마 ‘눈 잘 자, 코 잘 자, 입 잘 자’ 하고 아기 볼에 쪽 입을 맞출 것이다.

알고 보면 시 쓰기는 쉬운 받아쓰기인데 쉽지가 않다. 청소년시집 ‘난 빨강’(2010)에서 십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받아썼던 박성우 시인이 동시집 ‘우리 집 한 바퀴’에서는 어린 딸아이의 목소리를 싱싱하게 받아썼다.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그대로 적으려면 내 마음을 열어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이라 해도 좋을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지난 열흘은 한껏 달아올랐다. 한강 소설가가 일궈 낸 한국문학의 기적이기도 하지만, 문학은 서열화할 수 없는 것이고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여럿 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가에게 찾아온 기적이기도 하다. 작가는 ‘채식주의자’가 후보작이 되었을 때 그보다 ‘소년이 온다’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의 현장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중학생 소년의 목소리를 어떻게 이렇게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게 받아쓸 수 있을까. 그 받아쓰기가 내 가슴을 때리고 이 시절을 돌아보게 하니, 역시 잘한 받아쓰기의 위력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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