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세계일주학교를 만들었다. 세계일주를 꿈꾸는 이들과 함께 여행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해외여행자가 1,600만명을 넘는 시대에, 문화와 역사를 알고 가면 여행이 한층 더 유익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세계일주는 수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 맨 위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세계일주다.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도, 돈이 많아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생들도 자전거 하나 들춰 메고 세계를 여행한다. 요즘은 가족과 함께, 또는 친구 손잡고, 부부끼리 세계일주를 다녀온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세계일주학교의 문을 연 첫 날. 어떤 이들이 세계일주학교라는 배에 함께 오를 지 호기심을 안고 학교로 향했다. 의외였다. 세계일주를 철근도 소화시킬 것 같은 20대 젊은이들의 것이라고 착각했었나 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407호 강의실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강의실 안에는 머리에 소복하게 흰 눈이 쌓인 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클래식한 정장을 입고 계셨다. 뿐만 아니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나란히 온 이들도 네 쌍이나 있었다.

알고 보니, 수업을 들으러 온 이들 중 80% 이상이 막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앞둔 상태였다. 이분들의 근속 연수는 짧게는 30년 길게는 40년.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광고카피가 떠올랐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들이 세계일주학교의 문을 두드린 이유는 구체적이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몇 개월씩 사는 느린 세계여행을 하기 위해 온 이, 내년에 은퇴하는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미리 준비하기 위해 온 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이, 건강이 좋지 않아 앉아서 세계를 일주해보고 싶어서 왔다는 이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강의를 하러 온 강사들도 407호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강생들의 적극적이고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문화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렵고 학구적인 이야기들까지 스폰지처럼 쏙쏙 흡수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다른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강의의 좋은 예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수강생들의 세상을 살아온 다양한 경험이 다른 세상과 더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두 번째 줄 가운데 앉아 눈을 반짝이던 78세 할아버지였다. 열한번의 수업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언제나 30분 전에 와서 자료를 살피곤 했다.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는 교정에 있는 숲 사이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세계일주학교에 온 이들을 보니, 은퇴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여행작가학교를 통해 인연이 된 임택 씨에게도 은퇴는 새 삶의 출발점이었다. 12번 마을버스 은수를 타고 세계를 누비고 있는 임택 씨. 은퇴를 앞둔 어느 날 평창동 고개를 힘겹게 올라오는 12번 마을버스를 보고, 문득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종로3가와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10년간 46만km를 달린 마을버스와 함께, 세계를 달리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3년 전 페루 리마를 시작으로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을 돌고 지금은 이란을 여행하고 있다. 전세계 수많은 이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은퇴가 끝이 아니라는 증거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100세 시대다. 2050년이면 기대수명이 84.2세라는 예측도 있다. 은퇴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딱 좋은 때다. 은퇴를 한 후에 하는 여행은 그 전과는 다를 것이다. 쫓아가는 여행이 아닌 내 마음이 끄는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빠르게 달리기 보다는 작은 것들에 좀 더 눈을 주는 여행이 될 것이다. 내일 모레면 세계일주학교 1기가 졸업을 한다. 새로운 여행을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기를 기대해본다.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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