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 Cast] 로망포르노를 아시나요?

‘수상한 여의사’는 그래도 점잖다. ‘이치조 사유리-젖은 욕정’도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다. ‘색정 암컷시장’이나 ‘창녀 고문지옥’에 이르면 난감해진다(이보다 더한 것도 있다). 모두 영화 제목이다. 한때 국내 비디오 대여점 매출에 일익을 담당했던 에로 비디오를 떠올릴 만도 하다. 열거한 영화들은 일본의 일명 로망포르노 계열 작품들이다. 낭만이란 뜻의 로망과 도색을 의미하는 포르노가 이율배반적으로 결합된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과감한 성애 장면으로 묘사한다. 노출 수위가 포르노까지는 아니어도 포르노에 육박한다고 할까.

로뽀클래식 필름 페스티벌 포스터.

로망포르노는 명칭처럼 일본 영화계에 아이러니한 영향을 끼쳤다. 선정성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불황기 영화 인재들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몇몇은 이 장르를 통해 대가로 성장했다. 1980년대 로망포르노로 영화계에 입문한 구로사와 기요시와 모리타 요시미츠, 소마이 신지는 이후 유명 감독으로 성장했다. 2009년 ‘굿, 바이’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일본 영화로선 최초로 외국어상을 수상한 다키타 요지로 감독도 로망포르노가 배출한 인재다.

지난 19일부터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로뽀 클래식 필름 페스티벌은 로망포르노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자리다. 내달 22일까지 부산 대구 광주 전주에까지 ‘축제’는 이어진다. 앞에서 열거된 작품들을 포함해 로망포르노 19편이 상영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신들의 깊은 욕망'은 로망포르노에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황이 만들어준 도색 열풍

로망포르노는 핑크영화의 한 분류다. 핑크영화는 포르노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위가 낮은 일본 도색영화를 뜻한다. 1960년대 등장해 하나의 하위문화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망포르노는 일본 영화사 니카츠가 만든 핑크영화를 가리킨다. 헐겁게 표현하면 로망포르노가 핑크영화이고, 핑크영화가 로망포르노인 셈이다. 핑크 영화가 비주류인 작은 영화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반면 로망포르노는 ‘제도권’에서 제작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니카츠는 일본 영화계에서 메이저영화사였고, 로망포르노는 제작비도 여느 핑크영화보다 많이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핑크영화가 로망포르노인 셈이다. 하지만 고급스럽다는 수식이 좀 민망하기도 하다. 로망포르노의 촬영 기간은 열흘 이내가 대부분이었고, 상영시간은 70분 가량이었다. 여느 영화 제작비의 4분의 1 정도만 투여됐고, 10분 당 한번 정도는 침실 장면이 나온다는 암묵적 규칙도 지니고 있었다.

니카츠가 완성도 높은 도색영화에 눈길을 돌린 시기는 1970년대 초반이다. 일본 영화계는 70년대를 앞두고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등이 이끌던 1950~60년대 일본영화는 황금기를 누렸다. 영화사가 전후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프로야구판에 뛰어들 정도로 영화계는 풍요로웠다. 재일동포 야구인 장훈이 젊은 시절 활약했던 프로야구단 도에이 플라이어즈가 영화사 도에이에 의해 운영됐다. 전성기는 급속히 기울었고 가혹한 불황이 찾아왔다. TV의 보급과 할리우드 영화의 시장 잠식으로 일본 영화를 찾는 관객은 급감했고, 니카츠와 또 다른 메이저 다이에이는 71년 도산을 맞았다.

니카츠는 로망포르노로 재기의 길을 찾았다. 저예산이라고 하나 핑크영화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들이고, 회사가 보유한 우수한 인력들을 투입해 관객 되찾기에 나섰다. 1970년대 불황을 거친 뒤 80년대 에로영화를 쏟아냈던 충무로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니카츠의 살아남기 전략은 성공했다. 로망포르노가 70년대 일본 영화시장의 40% 가량을 차지했다. 로망포르노가 불황으로 영화계 입문이 힘들었던 젊은 영화 지망생들의 등용문 역할도 하게 됐다.

니카츠가 과감하게 로망포르노를 제작할 수 있게 한 힘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니카츠의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20세기 일본영화의 3대 메이저는 도에이와 다이에이, 쇼치쿠가 꼽힌다. ‘넘버4’ 니카츠는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일본영화 황금기에 빛을 더했다. 3대 메이저가 시대극이나 사무라이 영화, 서민극으로 관객을 끌어들인 반면 니카츠는 액션영화와 탐정물 등 서구적 장르영화로 인기를 얻었다. ‘살인의 낙인’ 등 상식을 벗어난 화법의 영화들로 유명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활약했던 곳도 니카츠다(물론 니카츠는 개성 넘치는 연출법을 참다 못해 세이준 감독을 해고하긴 했지만). 로망포르노에 영향을 준 일본영화계의 큰 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도 니카츠 소속이었다. 그의 초기작 ‘일본곤충기’(1963)와 ‘인류학 입문’(1966) ‘신들의 욕망’(1968) ‘호스테스가 말하는 일본 전후사’(1970) 등에서 로망포르노의 전조를 읽을 수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로망포르노 '간다천음란전쟁'으로 데뷔했다.
살 냄새가 만들어낸 도발과 전복

적은 예산이 들어가고 신진 영화인들이 투입되면서 로망포르노는 영화 실험의 새로운 장이 되기도 했다. 도식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남녀의 성애 장면을 변주하며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젊은 피는 새로운 영화기법의 적용을 갈망했다. 큰 예산이 주어지고, 흥행에 대한 압박이 컸다면 못했을 기법들을 실험하며 신진들은 미래의 대가로 성장했다.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성 묘사를 통해 도발적이면서도 전복적인 연출 기법을 익혔다.

로망포르노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1979)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떠돌이 카츠인데 그는 푼돈을 얻기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국을 떠돌며 살인 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쫓기는 그가 육체를 탐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영화는 배금주의에 카츠의 육체적 욕망을 포개며 일본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카츠의 아내와 노부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데 둘 사이엔 기이한 동료 의식이 형성된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목욕을 함께 하는데 넘지 못할 선 앞까지 갔다가 뒤돌아 선다. 서늘한 화법으로 일본인들의 비뚤어진 정서와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를 들춰내기 위해 영화는 로망포르노의 장르적 규칙을 활용한다. 쇼헤이의 ‘우나기’(1997)와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에서도 로망포르노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쇼헤이는 ‘나라야마 부시코’(1982)와 ‘우나기’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로망포르노를 통해 연출력을 다지고 세계 영화계로 나간 대표적인 감독은 구로사와 기요시다. ‘도플갱어’(2003)와 ‘로프트’(2005) 등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 본 이 감독은 전복적인 연출로 명성을 높였다. 그는 ‘간다천음란전쟁’(1983)으로 데뷔했다. 고급맨션에 살고 있는 어느 모자의 야릇한 관계를 목격한 뒤 소년을 엄마로부터 구하려는 여대생들의 사연을 그리고 있다.

wenders@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