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면한 조선ㆍ해운산업 구조조정

한은 독립성까지 해쳐서는 안 돼

다양한 측면의 국가적 논의 필요

조지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만들었다. 부실기업의 퇴출이나 구조조정도 희소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기업에 배분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부를 수 있다.

8년 전의 금융위기 당시 제너럴 모터스(GM)는 미국 납세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모두들 그게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찬성론자들은 GM 구제로 직접적으로 200만 명, 간접적으로 150만명의 일자리를 건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미국 실업률이 15%까지 치솟아 1,500억 달러의 구제금융보다 4,500억 달러나 많은 부담을 납세자에게 안겼을 것이라고도 했다.

반대론자들은 정부 구제를 당연시하는 기업의 무분별한 모험을 부추길 것이란, 도덕적 해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것이 금융 및 실물 자원의 배분에서 엄청난 왜곡을 낳는다는 지적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기업의 실패가 반드시 대량 실직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파산이 기업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러 국제항공사의 예처럼, 파산은 수익성이 있는 사업부문은 유지하면서 지나친 모험으로 치달은 사람들을 벌할 뿐이다. 기업이 통째로 또는 쪼개져서 매각되면, 인수자는 기존 일자리 상당수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의 피아트에 매각된 뒤 좋은 실적을 내고, 고용도 늘었다.

한국 정부가 조선ㆍ해운사를 구제해야 할까, 아니면 파산시켜야 할까?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KDB)이 조선ㆍ해운사 경영악화에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자본 부족에 봉착한 탓에 문제가 한결 복잡해졌다. 돌이켜 생각하면 산은의 부실기업 지원은 납세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다른 기업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었다. 산은이 이들 부실기업과 함께 ‘창조적 파괴’를 수행할 수 있느냐는 합리적 의문이 든다.

역사적 교훈이 있다. 첫째,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정부는 승자와 패자를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 일례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청정에너지 분야의 몇몇 기업에 정부 보조금을 주어 수십억 달러를 낭비했다. 일본은 수많은 오류를 누적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가 선진국 최고다.

둘째, 몇몇 정부는 중앙은행을 부실기업을 위해 발권하는 데 활용,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했다. 한국은행도 돈을 찍어 부실기업을 지원한 국책은행에 대주라는 요구에 직면해있다. 소위 ‘질적 완화(Qualitive Easing)’로, 중앙은행의 정상업무가 아니다. 질적 완화는 결국 납세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준(準) 재정정책’이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 상실과 낮은 경제성장률은 일정한 관계에 있다.

한국에서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관료들은 본능적으로 산은과 부실기업에 돈을 쏟아 부어 기업을 살리고 실업을 막자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현상유지의 항구화는 ‘창조적 파괴’가 아니다.

산은과 조선ㆍ해운업체는 조속한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진지한 국가적 논의가 요구된다. 첫째, 부실 기업을 구제해야 할까? 먼저 잃는 게 가장 적게 잃는 것이란 말이 있다. 파산도 좋은 선택일 수 있으며, 위에서 밝혔듯 많은 국제항공사는 정부 도움 없이 상황을 헤쳐냈다.

산은의 역할도 논쟁거리다. 많은 개도국에 산은 비슷한 은행이 있지만, 대다수 선진국에는 없다. 한국은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 그런 은행을 필요로 했겠지만, 아직도 그럴까. 민간은행이 자격 있는 기업에 금융지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금융시스템이 발달했다면, 시장이 정부보다 자원배분에 유능하게 마련이다.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일단 구제가 결정되더라도, 자금 조달 문제는 남는다. 최선의 선택은 민주사회의 정상적 입법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한은이 정부에 돈을 대는 게 최후의 선택이라고 볼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침체와 같은 경제 비상시기인데, 명백히 한국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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