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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신장애와 폭력

입력
2016.05.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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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한 여성이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헌의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에겐 방화 강간 등 폭력범죄를 저지른 남성 형제가 여럿 있었다. 직장상사를 자동차로 치어 죽이려 하거나 여성가족을 칼로 위협한 경우도 있었다. 그는 이들이 동일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고 의심했다. 연구팀은 폭력범죄를 저지른 남성 모두에게서 X염색체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 때문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고 뇌 이상을 초래해 폭력성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됐다. 범죄자의 뇌를 집중 연구해온 미국 신경과학자 켄트 키엘은 “그들의 뇌는 일반인과 다르다. 적어도 이런 차이를 만든 요인의 50%는 유전자”라고 말한다.

▦ 미국 정신의학자 프란츠 칼만은 1940년대 초반 뉴욕주 정신병원에 등록된 쌍둥이 조현병(調絃病ㆍ옛 정신분열병) 환자 691명을 조사했다. 유전자가 100%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이 환자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6배나 많았다. 이후 연구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조현병이면 자녀의 8~18%, 부모 모두 환자면 15~55%에서 발병하며, 다른 정신질환도 유전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직 유전적 결함이 폭력성의 근원일까.

▦ “혼자 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뒤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제발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백인이길 바란다고.”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의 말이다. 미국 대도시 빈민가(주로 흑인 밀집지역)에선 매 15~20분마다 총기사고로 사람이 죽는다. 뇌 이상을 초래하는 유전자 변이가 흑인에게 유독 많을 리 없다. 유방암 발병 유전자를 가졌다고 모두 유방암에 걸리진 않는다. 빈곤이나 가정해체, 사회적 갈등 등 환경적 요인도 강력한 폭력성 인자다.

▦ 국내 성인 6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조현병 환자만 50만명이다. 이들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다. 약물로 80%가 완치 또는 호전된다. 그러나 중증 환자가 치료받지 않으면 폭력성을 띨 확률이 일반인의 2~3배나 되고 10~20%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도 치료 받는 환자는 20%에 불과하다. ‘미치광이’라는 사회적 낙인 탓에 치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편견 없이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 스트레스 넘치는 강박사회가 지속되는 한 백약이 무효지만.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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