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금속 세공업을 하던 이모(48)씨는 2014년 3월 28일 새벽 A(29ㆍ여)씨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A씨가 자신을 남자친구로 인정해 주지 않자 화가 나 때렸다는 것이 이씨의 폭행 이유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이씨는 수사 당국에 다시 붙잡혔는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등의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수감됐습니다. 이씨는 A씨 사건으로 단 한번도 법정에 서지 않았지만 이미 2015년 7월 선고된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게티이미지뱅크

1심 재판이 시작될 무렵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기록을 통해 이씨의 주소지에 공소장 등을 발송했지만 문은 닫혔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검찰에 이씨가 머물고 있을만한 다른 주소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다시 발송했지만 역시 전달되지 않았고 이씨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자 1심 재판부는 공시송달 결정을 내리고 재판을 진행합니다.

형사재판에서 공시송달이란 사형,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지 않은 사건에서 피고인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공소장 등 재판 관련 서류를 직접 전달할 수 없을 때 법원이 내리는 결정입니다. 관보나 법원 게시판 등에 관련 내용을 공지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소송을 진행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법원 홈페이지에 주로 게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시송달 공고.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검찰과 경찰은 이씨에게 연락할 수 있는 또 다른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고 이 번호는 1심 법원에도 기록을 통해 전달됐습니다. 이씨의 두 번째 전화번호가 기록된 검찰과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 증거로도 채택됐지만 법원 담당자가 미처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재판 사실을 몰랐던 이씨는 당연히 항소를 하지 않았고 검찰도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습니다. 이씨는 법원의 실수였다는 이유를 들어 상소권회복청구를 했고 결국 다시 재판을 받아 2심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3월 대법원은 1심 법원의 공시송달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 재판부가 증거조사를 비롯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재판해야 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이씨는 소송 과정의 오류로 무려 4번째 재판을 받게 된 셈입니다.

이씨 사건 외에도 법원 공시송달 과정의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면서 하급심 판결이 취소되는 사례는 종종 있었습니다. 차량 구입 명목으로 대출을 받았다가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유죄를 선고 받은 장모(47)씨도 1심 법정에 서 보지 못했습니다. 1심 법원이 자동차 할부거래신청서에 기재된 장씨의 주거지 및 주민등록지, 전화번호 등을 통해 소재 파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6월 항소심은 이 같은 1심의 잘못을 지적하고 증거 조사부터 다시 시작, 징역 8월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역시 절차를 어겼다며 판결을 깨고 다시 심리하도록 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이 정작 장씨의 혐의 등이 기재된 공소장을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소지와 전화번호 등을 통한 접촉 실패 후 실제 거주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재판이 파기된 경우도 있습니다. 김모(26)씨는 2013년 11월 길을 걷다 어깨를 부딪혔다는 이유로 행인을 폭행해 전치 8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형이 너무 가볍다며 검사가 항소, 2심은 2014년 10월 징역 4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확정됐습니다. 1, 2심 모두 김씨 없이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앞서 법원 측이 공소장 등을 전달하러 갔던 주소지에서 검거돼 형이 집행됐습니다. 대법원은 하급심 법원이 김씨가 실제 해당 주소지에 거주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재판도 받지 못하고 감옥에 갈 수도 있는 문제인 만큼 공시송달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맞겠지만 법원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공시송달 대상이 된 피고인 가운데는 빚을 갚지 않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틀린 주소지와 연락처를 기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더구나 수사기관의 소환에 응하지 않아 조사를 받지 않을 경우 수배를 하거나 기소중지를 하는 것과 달리, 공시송달 대상자는 이미 수사기관 조사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입니다. 공시송달 오류로 인한 ‘순수한 피해자’는 드문 것이죠.

법원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실무자들이 공시송달 업무처리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피고인이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징역형을 선고 받을 수도 있는 만큼 대법원이 가능한 모든 주소지와 연락처로 시도를 해 보도록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라는 것이 대법원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피고인들이 직접 재판을 받지 않을 경우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이 훨씬 큰 만큼 주소지와 연락처를 정확히 기재하는 의무를 반드시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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