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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닮은 거대 제약회사

입력
2016.05.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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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밝힌 교수 협박…벌금만 내면 해결

건강한 사람도 약 중독 만들어 ‘이윤추구’

일부 글로벌 제약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일으킨 옥시처럼 임상시험을 조작하거나 약의 심각한 부작용을 알리지 않아 환자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부 글로벌 제약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일으킨 옥시처럼 임상시험을 조작하거나 약의 심각한 부작용을 알리지 않아 환자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146명이나 사망에 이르게 한 가습기 살균제의 심각한 부작용을 은폐한 것은 비단 옥시뿐일까. 일부 글로벌 제약사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약품 부작용을 숨기기도 했다.

약품 부작용을 우리는 거리를 지나다 건물 베란다에 있던 화분이 머리 위로 떨어졌을 때처럼 지독히 불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옥시처럼 일부 글로벌 제약사가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고의로 숨겼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미켈 야콥슨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펴낸 ‘의약에서 독약으로’(율리시즈 발행)에서 나타난 일부 글로벌 제약사의 어두운 그늘을 살펴본다.

부작용 속여 엄청난 수익 올려

1960년 6월 연간 수십억 달러 매출을 올린 첫 약품이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리처드슨-머렐 사가 개발한 콜레스테롤 치료제 ‘MER/29’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관상동맥질환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신약 MER/29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이는 없었다.

‘35세 이상 성인은 하루 한 알씩 먹으면 좋다’며 머렐 사는 홍보했다. 머렐연구소는 연간 42억5,000만 달러 판매액을 예상했다. 이 예상 금액은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팔린 전체 약품 판매액보다 많았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요. 여보.” 머렐연구소에서 일했던 여성연구원 블루라조던은 FDA 검사관인 남편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회사로부터 FDA에 보고할 MER/29의 유해성 자료를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머렐 사는 MER/29의 부작용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자료 조작을 지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MER/29는 FDA 승인을 받고 정식 판매돼 1억8,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MER/29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이 약을 먹은 사람 중 일부는 피부가 건조해져 물고기 비늘처럼 피부 각질이 일어나는 어린선(ichthyosis) 증세가 나타났다. 탈모와 함께 백내장도 생겼다. 하지만 머렐 측은 “개인의 특이 체질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발뺌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블루라조던은 회사를 그만두고 조작된 문서의 사본을 FDA로 보냈다. 1962년 4월 FDA 조사팀이 머렐연구소를 방문 조사하자 결국 머렐 사는 MER/29를 회수했다. 그렇지만 머렐 사는 자료 조작, 불법 판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피해자들에게 1인 당 8만 달러의 배상금을 줘야 했다. 블루라조던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부작용 사실 공개 않고, 진실 말한 교수 협박

1999년 5월 스미스클라인 비침(현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는 새로운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아반디아’를 개발한다. 그 해 9월 이 제약사는 경쟁사인 다케다제약이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 악토스와 아반디아를 비교 임상시험했다. 악토스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기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아반디아가 악토스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없었다. 여기에 아반디아는 심각한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갖고 있었다. 스미스클라인 비침 사는 비교 임상시험을 하기 전에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깼다.

“당신이 계속 아반디아 부작용을 떠들고 다니면 당신이 재직하는 대학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존 부스 노스캐롤라이나의대 교수는 미국당뇨병협회 회의에서 아반디아의 심각한 심장질환 부작용을 언급한 후 스미스클라인 비침 사에게서 끊임없이 협박을 당했다.

부스 교수는 자신의 대학에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반디아 문제점을 알리지 않겠다는 약속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쉽게 굴복했는지 내 자신이 부끄럽다.”

부스 교수에게서 항복을 받아 낸 스미스클라인 비침 사는 2006년 아반디아로 32억 달러를 벌어 들였다. 앞서 2001년 스미스클라인 비침 사는 FDA 요청으로 아반디아의 심장질환 위험성에 대해 6년 동안 임상시험을 시행했다. 이 임상시험에서 심장질환 위험성을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임상시험의 결과가 조작된 것이 드러났다. 아반디아를 복용한 당뇨병 환자의 43%가 심장질환에 걸렸다. 2011년 스미스클라인 비침 사는 사기와 사실 은폐 혐의로 기소돼 30억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스미스클라인 비침 사는 아반디아 판매금지 처분이 되기 전까지 모두 104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임상시험 조작사건으로 회사 고위 간부와 직원들이 여러 차례 법정에 섰지만 아무도 수감되지 않았다.

환자 치료보다 위궤양치료제 판매 중요

1983년 호주 서호주대학의 젊은 의사 배리 마셜(32) 박사는 약을 먹지 않고도 위장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마셜 박사가 발견한 나선형 세균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다. 마셜 박사와 그의 스승인 로빈 워렌 교수는 위염ㆍ위궤양ㆍ십이지장궤양 환자의 위 속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세균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워렌 교수는 위염 환자가 폐렴으로 항생제를 먹는 동안 위염이 치료된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시장은 이들 연구를 반기지 않았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위궤양 치료제 ‘잔탁’과 아스트라제네카와 머크 사가 제휴해 만든 ‘프릴로섹’등 블록버스터 약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에게 마셜과 워렌의 연구 결과는 불편한 진실일 뿐이었다. 위궤양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은 환자에게 좀 더 일찍 항생제 투여를 시도했다면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아스트라제네카 주식은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이윤 추구에 악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방해할 채비는 늘 갖춰져 있다.

마셜 박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새로운 이론을 발견할 당시 1~2년에 한 번 꼴로 신종 위산 억제제가 출시됐다. 신약이 나올 때마다 제약사들은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재단에 자금을 지원하며 위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주도했다. … 그들이 재단에 임상시험을 요구한 이유는 전적으로 약품 인지도를 높이고 이 약품이 FDA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업가 관점에서 보면 이해될 것이다. 항생제만으로도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시장에 내놓은 약품이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회사 주식도 떨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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