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 허용해야” 헌재 결정에 개정안 행안위 통과
1,000만명 이상 대량 유출사태 빈번… 2차 피해 가능성
시민단체 “개인정보 없는 번호로 변경해야”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본 경우 번호를 바꿀 수 있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생일, 성별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번호 부여 체계를 유지한 채 뒷자리 일부만 바꿀 것으로 알려져 2차 피해를 막기 힘든 졸속 개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법안소위를 열고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따른 신체ㆍ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 번호를 바꿀 수 있도록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출생신고 때 결정된 주민등록번호를 바꾸지 못하도록 정한 현행 주민등록법 규정이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해 2017년까지 개정을 완료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신체ㆍ재산상 피해 있어야 변경 가능… 대상 확대해야
개정안은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생명ㆍ신체 상 위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와 재산상 중대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한해서 번호 변경 청구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변경 대상의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비판한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가 생명ㆍ신체 상 위해 또는 재산상 중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말 결정 당시 “범죄를 기도,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거나 부정한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 등 불법을 목적으로 하거나 사회상규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아닌 한 주민등록번호의 변경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이 취지에도 반한다는 설명이다.
지난 2008년 옥션 및 GS칼텍스, 2011년 네이트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에 이어 2014년 초 주요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로 대통령의 주민번호까지 인터넷에 공개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경우에도 국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위험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실제 피해를 입증하지 못해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주민번호가 어떻게 악용될지 불안한 만큼 유출 피해자가 원하면 국가에서 변경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민번호 유출 시 생년월일ㆍ성별까지 유출, 임의번호 부여해야
변경 방법도 논란이다. 개정안은 “유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포함된 기존의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무작위 난수의 임의번호를 부여하는 문제는 장기 과제로 계속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앞자리에 생년월일, 뒷자리 첫 숫자에 성별을 표기하는 현행 주민번호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번호 유출시 생년월일과 성별 등 개인정보가 함께 드러나 다른 피해를 유발 할 수 있다. 이미 은행 등 상당수 기관들이 주민번호 사용 제한에 따라 개인식별번호를 생년월일로 바꾸는 상황이어서 생년월일 노출에 따른 2차 피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신생아부터 생일 등 개인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임의 방식의 주민번호 부여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와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0개 단체는 16일 ‘주민등록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의견서’를 제출하고 “주민번호 변경 개정안은 공청회 한번 갖지 않고 헌재 결정 5개월 만에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돼 졸속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며 “헌재가 권고한 2017년 12월 31일까지 충분한 사회적 토론과 해외 사례 검토, 국민적 합의를 거쳐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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