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선진국 클럽 가입은 잘 한 일이나

열악한 사회ㆍ경제 지표 부끄러워

이제는 성숙한 나라 가르침 따라야

20년 전인 1996년 중반 한국 정부는 매우 부산하게 움직였다. 약 2년 전부터 추진한 선진국 클럽 가입 작업이 막바지에 도달한 때문이었다. 외국과의 금융 및 자본거래 관련 규정들을 크게 자유화하는 한편, 시장을 개방하고 경제 운용을 유연화하는 등 선진국으로 가는 관문이라 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는 한국이 각고의 노력 끝에 OECD에 가입한 지 20주년이다. OECD 가입 20주년을 맞이해그 동안의 한국 경제를 되돌아 보면 실로 커다란 긍정적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개선되었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정상회담 개최를 필두로 하여 2005년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2010년의 G20 정상회담, 2011년의 핵안보 정상회의 등 중요한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의제 설정과 합의 도출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등으로 국제사회에 다양하게 기여했다.

동시에 선진 공업국으로서, 그리고 수출대국으로서의 위용을 한껏 자랑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함으로써 공적 개발원조(ODA)를 제공받던 나라에서 이를 베풀어 주는 나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놀라운 발전도 선보였다. 특히, 많은 개도국들이 지금도 한국 경제개발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 수출진흥, 투자유치, 직업교육 및 과학기술정책 등 주요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일으킬 정도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OECD 안에서도 50년대 최빈 개도국에서 2000년대 선진공업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은 많은 개도국의 귀감이 될 만하다는 평가를 자주 했다. 최근 OECD가 발표한 2015~16년 팩트북을 통해서도 확인되듯, 경제적 측면만 놓고 보면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OECD 안에서도 중간 정도의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몇몇 사회지표들은 과연 한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열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총 근로시간에서 멕시코에 이어 2위, 도로사망률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자살률 및 자살증가율에서는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어 눈에 띈다.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조선산업 등 한국경제의 대들보였던 몇몇 산업에서의 경쟁력 약화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조정, 그리고 노동시장에의 파급효과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96년 당시 어느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OECD 가입준비 작업을 지원했던 필자는 한국경제의 지난 20년의 명과 암을 남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연 선진국이 되고자 한 것이 비단 경제적 여건만을 개선하고자 한 것이었던가? 경제여건이 나아졌다고 해서 여가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긴 시간을 일하는 근로자들을 방관해도 좋은가? 여유가 없는 삶은 도로 위에서도 치고 받고 경쟁하는 양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좌절을 겪었다고 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정을 하는 데 대해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친다.

선진국 클럽 가입은 잘 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 온 느낌이다. 지난 수년 간 중국의 부상과 한국경제의 상대적 위축 현상에서 보듯, 전통적 제조업에서 국가대계를 찾는 것은 너무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아직도 수년 간 후발국에 앞서 있는 산업분야도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이왕 선진국들과의 정책협의, 정책공조의 장을 마련한 이상 이제부터는 OECD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을 하자. 경제ㆍ사회지표 양쪽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은 우리에게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제도, 유연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열린 사회, 책임지는 정치 등은 성숙한 선진국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핵심적 교훈이다.

박성훈/2016-05-10(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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