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폭행 고문으로 부상을 당하면 옮겨져 강제치료를 받던 국군광주병원 터를 찾은 일곱 분의 ‘오월광주’ 고문피해자들이 깨진 현관유리창 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서정열, 이행용, 박갑수, 이성전, 이무헌, 양동남, 곽희성

36년은 아주 긴 세월이다.

강산은 수도 없이 뒤집힐 시간이고 몇 세대쯤은 넉넉히 바뀌고 엎어질 시간이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또 어떠한가. 기억의 창고로 이동한 세월의 궤적은 압축되고 고정된 채 오롯이 자기만의 거울로 전이되어 남는다.

여기 36년을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단 한번 주어진 자기의 생을 범접할 수 없는 타의에 의해 부정당하고 강제된 채 무너지고 사라져야 했던 사람들, 1980년 5월, 남도 땅 광주의 한둘도 아닌 수많은 시민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12ㆍ12사태를 주도하며 권력을 잡으려는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신군부에 총칼에 의해 무수히 많은 꿈과 소망들이 벚꽃향 가득한 봄날 햇살 아래 쓰러진 참담한 역사의 한순간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1만3,140여 일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소리 없는 총성에 묻힌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자기 생이 원치 않는 억압에 짓눌릴 때 우리는 아프다. 더구나 선의를 잃은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이 원인이었다면 아픔의 크기는 차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들 가운데 일곱 사람이 자신의 지난 36년을 들고 다시 거리에 나섰다.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를 지켰던 그들이다.

군홧발에 채이고 무릎이 꿇려지며 온갖 고문 속에서 몸과 정신을 잃어야 했던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오월 광주’에 절감하는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손과 머리를 빌리지 않고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적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냈다. 상처받은 자존감을 어루만지고 잃어버린 자기 정체성을 끌어올리는 귀한 시간이었다.

5ㆍ18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 ‘기억의 회복’ 오월광주치유사진전.

일곱 분의 자기 생을 담은 이야기들을 모두어 이달 16일(월)부터 23일까지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의 제목이다. 사진전의 형식을 띠지만 시각예술로서 이미지의 작품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전시가 아닌 탓에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전시장을 찾아주시기를 권해본다. 그들이 어떤 감정으로 이 과정을 치러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상처들을 덜어내고 있는지 공감의 시선을 담아 살펴주기를 바란다.

나는 지난해 가을부터 매주 광주를 오가며 5ㆍ18 고문피해자 일곱 분과 사진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대면의 도구인 ‘사진행위’를 통해 자신에 내재된 상처의 기억들과 마주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생이 지닌 의미를 인정하도록 조력하는 역할이었다. 곽희성, 박갑수, 서정열, 양동남, 이무헌, 이성전, 이행용, 이 일곱 분의 고문피해자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36년을 다시 불러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스스로 왜 다시 ‘오월광주’인가 그리고 이미 망각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는 ‘오월광주’를 끌어올려 여전히 기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 치유사진전을 통해 온몸으로 전하고자 한다.

자기의 상처를 돌아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외면이나 회피로 회복을 꿈꿀 수는 없다.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용기는 고통스럽지만 지속적이어야 한다. 상처의 속살을 확인하고 나면 이제 서두르지 않으면서 적절한 치유행위들을 자신에게 건네는 것이 가능해진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의 속 깊은 공감의 시선은 그 용기에 탄력을 실어주는 커다란 위로이자 회복을 위한 훌륭한 보양식이나 다름이 없다.

묵은 상처가 오히려 자신을 살리는 긍정의 기제가 될 수 있음을 전하는 ‘오월광주치유사진전’에 많은 시민이 공감의 걸음을 디뎌 주시길 부탁해 본다.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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