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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으나 조금은 놀라웠다. 한달 간격을 두고 개봉한 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이렇게 닮은 꼴일 줄이야. 게다가 두 영화는 라이벌 만화 명가의 원작을 밑그림으로 삼았다. 하지만 흥행 결과도, 평단의 평가도 눈에 띄게 엇갈렸다. 더 놀라운 점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배트맨 대 슈퍼맨)과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시빌 워)는 슈퍼 히어로의 정의구현이 언제나 정당성을 지녔냐는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엇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두 영화의 운명은 매우 대조적이다. ‘시빌 워’는 예상했던 흥행 호조를 누리고 있고, ‘배트맨 대 슈퍼맨’은 기대 밖 흥행 성적을 거두며 극장가에서 쓸쓸히 물러났다. ‘시빌 워’가 마블의 건재를 과시한 반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코믹스의 야심 찬 반격을 맥 빠지게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시빌 워’는 695만5,612명이 찾았고, ‘배트맨 대 슈퍼맨’은 225만6,687명을 기록했다.

책임론도 당연히 따른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감독 잭 스나이더에게서 DC코믹스의 차기작인 ‘원더우먼’과 ‘저스티스리그’ 시리즈의 메가폰을 뺏어야 한다는 주장이 팬들 사이에서 나온다. 벤 애플렉을 주연으로 내세운 ‘배트맨’ 3부작은 아예 애플렉에게 연출을 맡기기로 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 수상이라는 빛나는 이력을 지닌 애플렉의 지명도에 기대야 할 만큼 DC코믹스와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 슈퍼 히어로들이 공통된 고민을 두고 대결을 펼치는 두 영화의 운명이 확연히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시빌 워’에는 있고, ‘배트맨 대 슈퍼맨’에는 없는 게 무엇일까.

영화의 원동력이자 쉽게 풀리지 않는 궁금증. 배트맨과 슈퍼맨은 왜 그토록 서로를 미워하지?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블랙 위도우가 동료들과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 테러 방지 작전에 나서고 있다. 현실에 바탕을 둔 이국성이 영화에 현실감을 더한다. 월트디즈니코리아컴퍼니 제공
현실성

두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판타지의 영역에 있으나 관객들은 현실성을 따지게 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리되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는 오랜 시간 모든 영화들의 고민이었다.

현실성에서 비교하면 ‘시빌 워’가 ‘배트맨 대 슈퍼맨’을 앞선다. 관객들이 주변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친밀함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일단 공간의 현실성. ‘배트맨 대 슈퍼맨’은 상상 속 도시 메트로와 고담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슈퍼맨이 활약하는 도시는 메트로, 배트맨이 근거지로 삼은 곳은 고담이다. 기존 ‘슈퍼맨’과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 관객들에게 익숙한 곳이지만 가상의 공간이 주는 거리감은 있다. 게다가 무관하게만 느껴지던 메트로와 고담이 만을 사이에 두고 있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오래 전부터 활동 영역이 어느 정도 겹쳤다는 의미인데, 영화는 의도치 않게 두 캐릭터가 탄생한지 수십 년 동안 대면하지 못했다는 점을 암시한다. 가상 공간이 주는 비현실성에 두 공간이 인접하고 있다는 의외성이 겹치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시빌 워’는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로 시작해 스위스 제네바, 독일 베를린을 오간다. 눈에 익숙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이 좀 더 흡입력을 발휘한다.

캐릭터의 현실성도 ‘배트맨 대 슈퍼맨’이 떨어진다. 배트맨은 슈퍼맨과의 대결을 위해 신체적 능력과 장비를 업그레이드한다. 신적 존재나 마찬가지인 외계인 슈퍼맨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다. 마스크에서부터 육중함이 느껴진다. 애플렉을 새로운 배트맨으로 고용했는데, 배트맨의 외형까지 바꿨으니 낯설 수밖에 없다. 배트맨이 스크린 안에서 구현했던, 진짜 존재하는 캐릭터라는 사실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고 의심과 회의가 늘어난 배트맨. 예전보다 더 암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스파이더맨은 철부지 10대의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유머를 담당한다. 월트디즈니코리아컴퍼니 제공
유머

‘배트맨 대 슈퍼맨’은 어둡고도 어둡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두 슈퍼히어로의 대결이다 보니 웃음기를 찾기 힘들다. 배트맨의 야행성, 슈퍼맨이 죽음에 이르는 결론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겁게 한다. 두 슈퍼히어로를 오가며 갈등을 부추기는 렉스 루터가 차가운 웃음을 전하나 악당으로서 한계가 있다.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가 가끔 웃음기를 품는데 보조적인 역할이라서 제한적이다. 웃음이라는 윤활유가 없으니 진지한 두 중심인물의 목숨을 건 대결을 담은 151분이 길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시빌 워’는 웃음이 이완작용을 하며 상영시간 147분에 활력을 준다. 냉소적인 백만장자 토니 스타크가 전하는 유머 감각에 스파이더맨의 수다와 앤츠맨의 루저 감성이 더해진다. 유머를 발산하는 캐릭터가 여럿 배치되면서 액션의 쾌감도 커진다.

‘시빌 워’는 상실을 다룬 영화다. 캡틴아메리카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잃었고, 동년배 지인의 장례를 목도한다. 그가 친구인 윈터 솔져와 나누는 대화가 추억을 공감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 줄 정도다. 윈터 솔져는 자신의 의식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오랜 친구와 교감도 마음대로 나눌 수 없다. 블랙 팬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다. 아이언맨은 한꺼번에 잃은 부모에 대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악당 지모는 어떤가. 그는 모든 가족을 잃고, 슈퍼히어로들을 향한 복수를 꿈꾼다. 상실의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들로 가득한데 영화는 밝고 경쾌하다. 유머의 공이 크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는 원더우먼의 너무 늦은 등장과 작은 비중이 아쉽기도 하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여러 슈퍼히어로가 편을 갈라 싸우는 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을 만하다. 월트디즈니코리아컴퍼니 제공
감초

등장인물들의 양적 질적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두 슈퍼히어로의 대결을 이야기의 주요 축으로 삼는다. 원더우먼이 영화 후반부 가세하나 기여도가 많이 낮다. 원더우먼이 등장하면서 영화가 활기를 찾았다는 평이 적지 않다. 다양한 인물들이 이야기에 변수를 주며 긴장감을 빚어냈으면 관객들로부터 좀 더 큰 호응을 받지 않았을까.

‘시빌 워’는 아예 두 팀으로 나눠 대결을 펼친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주축이라고 하나 각 팀에 소속된 슈퍼히어로의 사연과 활동에도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기존 ‘캡틴아메리카’ 시리즈나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슈퍼히어로를 끌어들이며 신선도를 더했다. 블랙 팬서, 스파이더맨, 앤츠맨은 등장만으로도 호기심과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변명의 여지가 있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처럼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출발점에 해당하는 영화이기에 한계가 있다. 관객들이 이야기의 가닥을 잡고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영화이니 많은 슈퍼히어로를 등장시킬 여유가 없다. 이미 여러 시리즈를 통해 슈퍼히어로 캐릭터의 특징과 사연을 소개하고 이들에 기댄 ‘시빌 워’와는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어벤져스 2.5’라는 수식까지 듣고 있는 ‘시빌 워’와 달리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제목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도 아쿠아맨과 플래시가 이야기의 진전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으면 영화는 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배트맨과 슈퍼맨의 서로를 향한 근거 약한 적대감만으로는 151분이 길기만 하다.

마리사 토메이(왼쪽)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영화 '온리 유'에서 연인을 연기했다.
이야기 거리

마블 영화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하나의 큰 세계를 만들다 보니 사연이 풍성하다. 캡틴아메리카와 윈터 솔져의 우정과 대립 등은 이미 ‘퍼스트 어벤져’와 ‘캡틴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묘사됐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숙모가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 만하다. 스파이더맨의 숙모 메이는 노령으로 묘사되곤 했다. ‘스파이더맨’ 3부작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속 숙모 메이는 얼굴 위 주름이 깊고 백발이었다.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이 “숙모가 너무 젊고 예뻐서 당황스럽다”라는 대사를 스파이더맨에게 던지는 이유다.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메이를 연기한 마리사 토메이의 오랜 관계도 관객들의 눈길을 끌 만했다. 두 사람은 이미 영화 ‘채플린’과 ‘온리 유’에서 연기 호흡을 맞췄다. 바람둥이 아이언맨이 미모의 메이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 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의 새로운 시리즈로 내년 개봉 예정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에도 두 사람은 모습을 비춘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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