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저자는 합리적인, 그러나 다소 까칠한 기자였다. 그런 그가 ‘아버지를 찾아서’라는 책을 썼다. 책갈피에 작은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내가 페이스북에 쓴 아버지에 관한 글을 읽고 책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동아일보 전 국제부장이자 프레시안 전 편집국장이었던 김창희다.

밤늦게 책을 펼쳤는데 그만 새벽까지 다 읽고 말았다. 김창희 기자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아버지를 찾아가는 저자의 여정에 담긴 개인적ㆍ사회적 의미에 있다.

책의 내용은 아버지가 남겨 놓은 사진 필름과 메모용 개인 수첩을 따라 1950년대 아버지의 개인적 자취를 추적하고 추리하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그 과정에서 기품을 잃지 않고 살아낸 아버지의 눈에 비춰진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우리 사회의 소소한 풍경이 펼쳐진다.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삶을 미시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황량했던 시대로만 알고 있던 1950년대에 온기를 불어넣고 그 실체에 다가서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책의 마지막을 이루는 ‘소멸 혹은 위로’라는 챕터다. 1953년 새로운 직장을 찾아 논산에서 출발해 익산 전주 남원 여수를 거쳐 통영으로 갔던 30대 아버지의 여행을 2015년 50대 아들이 그대로 쫓아가는 길을 펼쳐 보인다.

뜻밖의 여정에서 저자는 아홉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다. 이젠 양귀비꽃으로 가득한 남원의 옛 기차역을 찾아갔는데, “30대의 아버지가 양귀비 꽃밭을 걸어 나와 50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평안도 사투리로 ‘힘드네?’라고 말을 건다”. 식민지 시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참으로 어려웠던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외려 아들을 위로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울컥했다. 힘든 삶을 견뎌낸 이가 저자 아버지뿐이었으랴. 이 땅의 평범한 아버지들의 삶은 모두 그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의 과거는 어떠했던가. 소수의 아버지는 호사와 특권을 누리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적지 않은 다수의 평범한 아버지들은 광복ㆍ산업화ㆍ민주화로 이어진 숨 가쁜 현대사 속에서 자신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면서 살았다. 살았다기보다는 참고 버텨왔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교사로 40여 년간 일해 왔던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음악과 산행을 취미로 두고 있는 나는 오래전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아버지의 취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딱히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키우며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에게 자기만을 위한 취미 생활이라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맥스웰 가루 커피 몇 잔과 오기택의 ‘고향 무정’을 포함한 철 지난 트로트 몇 곡뿐이었다.

아버지의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버지만을 추억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왔던 우리 어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49.6%의 노인 빈곤율(2015)과 10만명당 55.5명에 달하는 노인 자살률(2014), 89.2%를 기록한 노인 만성질환율(2014)과 140만에 가까운 독거노인(2015), 그리고 가족과의 의사소통 단절이 우리 사회 어버이들의 현재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현재가 다가오는 미래에 개선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에선 ‘하류노인(下流老人)’이란 말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하류노인이란 수입과 저축이 거의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는 채 최소 생활수준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하류노인이 우리 고령 세대의 미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모레는 어버이날이다. 누구든 개인적 차원에서 돌아가신 어버이를 기리거나 살아 계신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 할 것이다. 하지만 ‘노후 절벽’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어머니를 포함한 아버지의 미래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처방을 고민하는 하루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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