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적 이유에서 미루어졌던 구조조정에 대한 논란이 무성하다. 논란의 핵심은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의 분담이다. 과연 한국사회에는 이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가 공동체 인식에 대한 사회 전체적 합의를 도출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의 신화와 두레, 이웃사촌 등 마을 중심의 협동 속에 오랫 동안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국가주도형 고속 성장 이후 앞으로 나가는 일에만 열중했을 뿐 공동체 의식을 새로운 산업사회에서 재발견하는 일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한국의 실정은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서구사회와 같은 갈등 구조를 피해야 한다는 엘리트들의 합의 속에 정치, 행정, 사회 각 분야에서 제도를 창출할 때 일본 전통을 재창조하여 적용해 왔다. 이 결과 일본사회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거시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저(低) 갈등의 일본 노사 관계는 이미 잘 알려졌다. 무라카미 야스스케(村上泰亮)는 이런 비정치적 성향의 일본 신중간층과 노동자층을 ‘신중간 대중’(New Middle Mass)이라고 칭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로 성장에 치우치면서, 닥쳐올 사회 갈등의 조정 기반을 구축하는 사회 전반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노사 관계가 그 좋은 사례다. 한국 노사 관계는 기업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노동자를 머슴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같은 가족으로 보는 다른 극단이 공존하고 있다. 생산 차원에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면서 분배의 문제는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의식이 한국 사회에 팽배하게 되었다.

공동체 의식의 점검과 이를 반영하는 제도가 창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맞자, 대외적으로는 방어적인 공동체 의식을 발현했지만 대내적으로는 정반대로 어정쩡한 서구자유주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극단적 사욕주의에 기반을 둔 영합적 사조를 불러들였다. 이와 함께 만연한 정치권의 지역주의는 한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다. 이 결과 한국사람들에게 공동체란 자신들에 익숙한 혈연, 학연 및 지연에 기초한 아주 좁은 단위가 되어 버렸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도전은 사회 전체에 아무런 가치적 합의가 없이 제도와 정책 차원에서 땜질식 처방으로 한국사회에 맞지 않는 관행들이 횡횡하는 데 있다.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눈가림을 위해 그저 상황을 모면하면서 근본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 나라가 위기를 맞아 새로운 가치와 이에 상응하는 제도를 수립하여 적응해 왔다. 미국의 대공황이 그랬고 1930년대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의 제도적 정비가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외환위기를 맞고서도 우리 몸에 맞는 제도와 관행의 수립에 실패했다.

한국의 과거 행적을 볼 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구조조정도 그동안 미뤄진 것처럼 또다시 급하게 서두르면서 위기만 모면하려는 단기적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발등에 급한 불은 꺼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공동체 의식의 재확인을 통한 몸에 맞는 제도의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 한국사회는 만연한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외부의 충격을 국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제도의 창출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목표이자 가치다. 생산에 치중한 사고에서 벗어나 분배와 생산의 효율성과 균형을 취하면서 상시로 오는 외부의 경제 충격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제도의 재창출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록 늦었지만, 한국사회의 꺼져가는 공동체 의식의 불씨를 되살려 국민적 합의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가장 시급하게 극복돼야 할 신화는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이 생산 효율성을 저해하고 경쟁력을 감소시킨다는 생각이다. 공동체의식에 기반을 둔 사회복지제도가 생산 효율성을 감소시키기보다 그 반대로 기본적 생활이 보장된다면 경제적으로 더욱 많은 도전을 할 수 있다는 폴 크루그먼의 관찰은 한국 제도 창출에서 새겨볼 만한 교훈이 아닌가 한다.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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